[플랫폼 규제 패러다임 바꾸자]“의료에는 플랫폼 안돼”…비대면 진료, 피지도 못하고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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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큰 방향이 수립되지 않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자칫하면 30여개에 달하는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체가 '제2의 타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서울 서초구 닥터나우에서 개발자들이 비대면진료 이용자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스템 개편을 하고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13개국 전문가가 본 비대면 진료의 장점비대면 진료 주요 질환과 진료 건수

“제2의 타다 사태를 두고만 볼 것인가.”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대상자와 진료과목 범위를 대폭 축소하자 업계에서는 우려가 빗발쳤다. 세계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 시행 범위를 축소하자 글로벌 흐름을 역행한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해 의료민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료계 목소리는 강력하다. 비대면 약배송과 약 오남용 등을 문제삼은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의료계 출신 국회의원까지 비대면 진료 시장에 플랫폼 기업이 진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비대면 진료에 플랫폼 필요 없다”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 반대 이유를 크게 오진 가능성과 이에 대한 의료진 법적 처벌 면제 방안 부재, 약물 오남용 우려로 꼽는다.

반대 이유 한 켠에는 '플랫폼 종속'에 대한 우려가 진하게 녹아있다. 이미 e커머스·금융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플랫폼의 파급력과 이에 따른 시장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의료계도 플랫폼이 파고드는데 따른 불안감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논의하면서 △비대면 진료 전문 병·의원 금지 △온라인 전문약국 금지 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플랫폼을 이용해 의약품을 비대면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게 되면 현재 병원 중심으로 형성된 오프라인 약국이 직격탄을 입기 때문이다. 비대면 진료 전문 병·의원을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대한약사회는 별도 '처방전달시스템'을 비대면 진료 대안으로 제시했다. 비대면 진료 민간 플랫폼에 약사회원 종속을 막고 민간 플랫폼이 약국을 제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시스템도 특정 의료계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공공 플랫폼 성격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비대면 진료 업계는 의료계과 약사회가 막연한 반대 대신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이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의료계와 약계가 비대면 진료 시 위험하다고 우려하는 점을 설정해 정말 위험한지, 얼마나 위험한지를 들여다볼 근거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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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종속에 대한 의료계 우려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서도 드러났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플랫폼을 이용한 비대면 진료에 강하게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 의원은 지난 8월 열린 소위에서 “지금까지 시행한 비대면은 플랫폼 없이 해왔다”며 “플랫폼을 이용한 비대면 진료는 원칙과 모든 비대면의 기본에서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또 “섬.벽지 의료기관, 노인.장애인, 감염병 환자는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다”며 “굳이 플랫폼을 통해야만 한다는 것은 복지부가 플랫폼 사업을 키우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초진 환자를 정하고 재진 환자는 특정 질환에 대해 명백하게 국한시켜야 한다”며 “전 국민의 모든 질환에 대해 비대면 진료 재진을 허용하는 것은 플랫폼 사업자와의 유착을 의심케 하는 아주 불순한 의도”라고 말해 복지부 차관이 항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간기업이 아닌 정부 주도의 공공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의원은 “비대면 진료에서 우려되는 처방전 위조, 약 오남용, 비대면을 남용하는 의사, 수가 문제 등이 모두 플랫폼에 모여있다”며 “정부가 플랫폼을 장악해야 관리·감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발언이 사실상 민간기업의 비대면 진료 '퇴출'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플랫폼 기업 한 관계자는 “플랫폼은 규제가 필요하니 아예 진입을 막자는 발언이 국회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라며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온 공공 플랫폼 성격상 민간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용자 눈높이를 충족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서 대상을 축소한 결과 취약계층의 비대면 진료 접근성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성 의원실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장애인 환자수는 시범사업 실시 직전인 5월 1만4242명에서 6월 8772명으로 38% 감소했다. 65세 이상 장기요양 환자 수는 1만464명에서 8132명으로 22% 감소, 섬·벽지 거주자는 543명에서 321명으로 41% 줄었다. 특히 초진 환자는 장애인 -68%, 65세 이상 장기요양 환자 -55%, 섬·벽지 초진환자 -61%를 각각 기록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초진환자의 비대면 진료 접근성을 개선하고 재진환자 기준을 완화하는 등 시범사업을 보완하고 입법에 속도를 내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불거진 공공 플랫폼 논란

병원 예약·접수 앱 '똑닥'이 지난달 유료화를 시작한 것은 공공 플랫폼 도입에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2017년 출시 이후 무료 서비스로 운영하며 사용자를 모았으나 유료화로 전환했다.

지난 1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똑닥 유료화 문제가 논의됐다. 의원들은 무료 이용자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플랫폼 업계는 특정 전자의무기록(EMR)이 특정 앱만 연동돼 실질적인 플랫폼 장악 효과가 EMR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플랫폼 기업 한 관계자는 “여러 EMR와 앱이 장벽없이 연동돼야 국회·정부가 우려하는 접근성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법 안에서 민간·공공 플랫폼을 모두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부작용을 최대한 낮추겠다”면서 “다만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당부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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