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대표의 UX스토리] 〈9〉착각은 자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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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팀플레이어 대표

바쁘게 업무를 하고 있거나 멍하게 휴식을 취하다 보면 휴대폰 소리 또는 진동이 온다. 누군가 나를 찾는구나 하는 생각에 후다다닥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켜 본다. 그러나 내게 걸려온 전화는 없었다. 분명 주머니 속에 있던 내 휴대폰의 진동을 느꼈는데 내가 착각했던 것이다.

강남역 횡단보도를 건너다 친한 지인의 뒷모습을 보고 이름을 불렀으나 잘 듣지 못했는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내가 다가가서 어깨를 툭툭치면서 “oo야 오랜만이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아차 싶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순간 착각해 말을 걸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랑 착각했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을 하며 '가짜무기'를 만들었다. 마치 진짜 탱크나 무기인 것처럼 보이게 외형을 만들어 멀리서 러시아가 착각해 공격함으로써 값비싼 미사일과 로켓을 낭비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착각(illusion)이란 우리가 보이는 사실 또는 객관적인 상황을 보고 들었으나 우리의 몸은 그것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르게 지각하고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보고 듣는 것을 사실과 다르게 받아들여 인지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들, 알고 있는 지식들과 결합돼 이해하게 된다. 대상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과 결합해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내 휴대폰 알림 소리 나 진동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었고, 친구의 외형적 모습을 익혔기 때문에 사실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착각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기업의 서비스 담당자들이 이성적이고, 실리적이며 효율성을 강조한 전략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기업의 전략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비스 가입 프로세스를 줄여 빠르게 유료서비스 또는 본 서비스로 진입하는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원한다. 가입을 빠르게 하고 나면 사용자와 기업 입장에서 유용한 정보와 서비스가 많을 것이니 가입의 허들을 빠르게 완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은행이나 주식의 경우 가입절차가 매우 많다. 본인인증을 두 번 정도 해야 하고 개인정보를 작성하고 약관을 확인하는 단계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자 한다면 20~30분이 소요된다. 그래서 가입 프로세스 페이지를 줄일 수 있는 디자인을 원한다. 그러나 진행 단계를 줄이면 더 빨리 좋은 정보와 혜택을 사용자가 이용할 거라는 생각은 기업의 착각이다. 사용자는 '이 서비스의 가입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 것일까'를 사전에 고민하며 이 물음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 프로세스가 진행된다면 페이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로 넘어가 한 페이지당 체류시간(duration time)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작성해야 할 페이지가 적다는 사실과 사용자가 빠르게 프로세스를 완료했다는 인식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되며 정작 가입 프로세스의 페이지 숫자를 줄였으나 사용자 인지는 길고, 복잡한 단계로 여길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들은 애플 제품을 많이 사용한다. 디자인에 좀 더 특화된 프로그램, 그래픽 사양, 섬세한 색상선택등을 이유로 선호를 한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이 분야와 관계없는 사람도 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자가 강연 도중에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경영전공자에게 물어봤다. “왜 애플 제품을 사용하시나요?” 경영전공자는 “그냥 멋있어 보이잖아요. 저는 여기서 거의 인터넷밖에 하지 않지만 커피숖에 갈 때 이걸 들고 가서 인터넷만 해요. 이걸 쓰고 있으면 그냥 멋져 보여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저를 멋있게 보는 게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소비자 또는 사용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효율적인 제품을 구매할 것을 늘 전제하고 판매 방법을 고민한다. 우리의 생활에서 '그냥 전화해 봤어', '아무거나 먹자', '몰라, 그냥 그렇게 행동이 나오던데', '그냥 좋아 보여서 샀어', '심심 해서 그냥 보는 거야', '와~우(wow)'와 같은 말들을 자주 하게 된다.

마술사를 영어로 illusionist라고 한다. 관객을 앞에 두고 보이는 행위들을 착각하게 만들어 사실과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러한 재미나고 신나는 착각은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경험하고 싶어진다. 일상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실제적 사실을 알면서도 논리적이고 합리적 이유보다는 사용자의 '의도적 착각'을 통해 마음속의 또 다른 좋은 경험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인숙 팀플레이어 대표 ux.teamplay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