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R&D 예산 일괄 삭감은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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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중소기업 R&D 예산이 25.4%나 삭감됐고, 이는 기 협약된 중소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할 것으로 전망”

“국제 공동 R&D 예산 삭감으로 해외 기관과의 공동연구 중단 위기”

“기상청 R&D 예산 17.5% 줄며 연구사업 차질 우려”

“제주지역 기업 지원 R&D 예산 68% 삭감으로 추진 중인 연구와 사업 좌초 위기”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후폭풍이 거세다. 앞의 발언들은 최근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서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들 질의 중 일부다. 국감에서는 상임위원회를 막론하고 R&D 예산 삭감을 질타하는 질의가 쇄도하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 R&D 예산은 올해 31조원에서 내년 25조9000억원으로 16.6% 줄었다. 우리나라 국가 R&D 예산이 전년 대비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이다. 삭감폭은 1991년 당시 10.5%보다 훨씬 크다. 내년 정부 총 지출에서 R&D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줄어 3.94%가 됐다. R&D 예산 비중이 3%대로 떨어진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으로, 올해 4.9% 대비 1%p 가량 감소했다.

국가 R&D 예산을 지원받던 연구현장과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향후 사업과 기술개발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최대 생물학 연구자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이공계 대학교수와 연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내년 R&D 예산 정책으로 연구비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87.9%나 됐다. 연구비 감소를 예상한다는 답변자 중 80.8%는 연구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국가 R&D 예산 삭감은 윤석열 대통령이 R&D 카르텔을 언급한 이후 급격히 나온 조치로 해석된다. 사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R&D 예산의 비효율적 집행과 부정사용은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나눠먹기식 예산분배도 끊이지 않는 문제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낭비되는 것이니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내년에 삭감하는 R&D 예산이 정말 문제가 있는 'R&D 카르텔'로 흘러가는 예산을 제거하고, 나눠먹기식 예산 분배를 해소한 것인지다. 문제를 찾아내서 제거하려면 정교한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비효율과 문제의 근거를 찾고, 이를 기반으로 문제가 있는 사업을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을 보면, 그리고 지금 국감에서 지적되는 것을 보면 이런 정교한 작업을 거친 것으로 보기 어렵다. R&D 예산을 삭감하려다 보니 급하게 일괄적으로 줄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국가 R&D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투자다. R&D를 통해 확보할 기술경쟁력은 부존자원이 적은 우리나라가 강화해야할 핵심 무기다. 지난 수십여년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경제 상황이 굴곡을 겪는 가운데서도 R&D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고 유지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R&D 예산 삭감은 단순히 한해 지원을 줄이는 차원의 일이 아니다. R&D 생태계 전반을 흔들 수 있다. 그동안 지속해오던 R&D 사업에 후속 투자가 끊기면 기존에 투자한 것 마저 의미없게 될 수 있다. 투자 위축으로 연구개발 사업이 위축되면, 연구자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연구자가 진입할 동력도 잃게 된다.

국가 R&D 예산 집행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목표라면 이제라도 문제를 정확히 찾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일괄 예산 삭감은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 씨뿌리는 투자를 줄이면 미래에 거둘 수확도 줄어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권건호 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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