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칼럼] 혼자서는 막을 수 없다…사이버 보안, 협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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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쿼드마이너 최고기술책임자(CTO)

현재 사이버 위협의 양상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2025년 기준 전체 사이버 공격의 36%가 국가 지원 공격(Nation-State Cyber Attack)이며, 이는 단순한 해킹을 넘어선 체계적인 사이버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심각한 건 공격 빈도와 정교함의 급격한 증가다. 지능형지속위협(APT) 공격의 특성을 보면 평균 56일 이상 시스템에 잠복하며, 조사 대상 중 12%는 무려 2년 이상 탐지되지 않은 채 활동했다.

이런 위협들은 개별 기업의 보안 체계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하는 데 특화돼 있다. 한 곳에서 침입에 성공하면 연관된 다른 시스템으로 확산하는 횡적 이동(Lateral Movement) 전술을 구사하며, 이는 기존의 경계 보안(Perimeter Security)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해외 주요 보안 기업들은 일찍부터 협력 생태계 구축에 집중해왔다. 팔로알토네트웍스의 경우 '테크놀로지 파트너 프로그램'(Technology Partner Program)을 통해 수백개 파트너사와 기술을 통합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단일 플랫폼에서 다양한 보안 기능을 제공하며, 고객에게는 통합 운영의 편의성을, 파트너에게는 시장 확장 기회를 제공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성공 요인은 명확하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독점보다는 상생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에코 파트너십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이버보안 기업 간 기술협력 파트너십 프로그램(TAPP)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품 연동을 넘어 기술적 통합과 비즈니스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접근법이다. TAPP의 핵심은 개별 보안 솔루션을 플랫폼 차원에서 통합해 '1+1=3'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려지지 않은 공격 및 위협 헌팅과 식별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네트워크탐지·대응(NDR) 솔루션과 사이버 위협 인텔리전스(CTI)를 통합할 경우, 단순한 위협 탐지를 넘어서 공격자의 정체와 향후 공격 경로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즉, 보안 사고가 확산하기 전에 대책을 세우고 실질적인 대응을 통해 위협그룹들이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전, 보안 사고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론 협업을 통한 연구개발(R&D) 투자 부담 분산과 글로벌 표준 기술 개발이 가능해진다. 시장 측면에선 파트너사의 고객 네트워크를 활용한 시장 접근성 향상과 공동 영업을 통한 비용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통합 플랫폼을 통해 보안 위협 대응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사이버 위협 환경에서 기술적 통합과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APT는 여러 공격 벡터를 동시에 활용하며, 이를 막아내려면 네트워크, 엔드포인트,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등 모든 영역의 보안이 유기적으로 연동돼야 한다.

기존의 개별 기업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로벌 메이저 보안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규모의 경제와 기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확보해야 하며, 이는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거 한국 보안 업계에서도 협력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한 기업이 주도하려 하거나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지속되지 못했다.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표준화를 통한 기술적 상호운용성 확보, 공동 R&D를 통한 혁신 가속화, 통합 마케팅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실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독점보다는 상생을 선택하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이버 위협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의 대응도 개별기업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혼자서는 막을 수 없는 위협 앞에서, 이제 한국 사이버보안 업계는 협력과 상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용호 쿼드마이너 최고기술책임자(CTO) felix@quadmin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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