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뾰족하게 날선 말(言)과 글(語)이 상처를 주고 있다. 국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등 해외도 다르지 않다.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도 마찬가지다. 생각만 달라도 폭언과 욕설을 아끼지 않는다. 온라인은 더 심각하다. '복사하기'와 '붙이기'를 통해 분쟁은 쉽게 퍼진다. 커지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물어뜯기'를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AI)시대는 어떨까. 명령, 지시, 검색을 하기 위한 언어가 '정확'해야 좋은 결과물을 얻는다. 부드럽고 우아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유머를 더하면 AI가 알아듣지 못한다. 딱딱한 언어만 살아남는다. 기계어가 사람의 언어를 대체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이다. CCTV, 스마트폰에 노출돼 말과 글도 녹취되고 박제된다. 비공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안전하지 않다. 말과 글의 앞뒤를 자르면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된다. 관계가 틀어지고 분쟁이 생기면 언제든 공개되고 법정에 나온다. 언어는 줄어들고 대화는 경직된다. 대면 소통은 불편·불안하고 SNS, 메시지 등 손쉬운 비대면 접촉은 늘고 있다. AI를 대하듯 정확도는 높아져도 피로감이 커진다. AI가 할 일이 늘면 사람의 소통과 대화는 그만큼 줄어든다.

소통과 대화의 윤활유였던 '유머'는 어떤가. 꼬투리를 잡아 비하하고 조롱하는 수단이 됐다. 위트 가득한 유머는 어디로 갔을까. 경기침체와 과열경쟁 속에 메마르고 딱딱한 AI 언어 속에 갇힌 탓일까.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 생각난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 방송토론회에서 당시 주류정당을 비판하고 소수정당 지지를 호소했다. '삼겹살을 굽는 불판도 기름때가 많아지면 새로 갈아야 하듯' 정치판을 바꾸자고 했다. 50년 넘은 낡은 정치판이 국민을 힘들게 하니 교체해야 한다는 말이다. 머리에 쏙 들어오니 널리 회자됐다.
정치권의 소통과 대화법은 어떻게 해야 할까. 로널드 레이건을 기억하자. 영화배우 출신 공화당원이고 제40대, 제41대 미국 대통령이다. 유머를 통해 소통하고 대화했다. 1984년 재선에 나선 그는 73세의 고령과 건강이 문제됐다. 당시 상대방 민주당후보 월터 먼데일은 56세에 불과했다. 토론회에서 그 질문을 받았다. 뭐라고 했을까.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 상대방 후보가 너무 어려서 경험이 부족해도 악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유머가 나이를 이긴 순간이다. 유머로 소통하면 실수가 적고 결함조차 덮인다. 1966년 레이건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직후다. 언론은 공직 경험부족을 꼬집기 위해 상세한 직무수행계획을 물었다. “잘 모르겠다. 영화배우 시절 주지사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고 웃어넘겼다. 언론의 질문이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는 냉전시대였다. 유머는 극한대립의 긴장을 완화하고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체제를 홍보하려고 개를 이용한 유머를 소개했다. 미국 개가 “미국에선 격렬하게 짖으면 빵이 생긴다”고 했다. 옆에 있던 공산주의 동유럽 국가의 개는 “그런데, 빵이 뭔데?”라고 되물었다. 소련 개는 뭐라고 했을까. 고민하더니 “짖는다는 게 뭔데?”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보다 효과적인 체제홍보가 있을까. 민주당의 복지정책 문제점까지 짚고 있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경제가 움직이면 세금을 매기고, 너무 빨리 움직이면 규제하고, 움직이지 많으면 보조금을 준다”고 했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통과 대화법이다. 그는 방만한 재정을 축소하고 대규모 감세를 시행했다. 기업에 자유를 주되 경쟁을 부추겼다. 경제는 호황을 되찾았다. 불평등 등 부작용을 동반하기도 했다. 미국은 그와 함께한 시절을 잊지 못한다.
공약, 정책 등 핵심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소통과 대화는 뭘까. 경기침체와 AI 발전에 일자리 박탈 등 깊어가는 국민의 불안, 소외를 해소하는 것이다. 유머 등 재미를 더한 소통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대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