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양자키분배(QKD) 기술과 양자내성암호(PQC)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양자암호'를 게임체인저로 내세워 국제 표준 주도권 전략을 가동한다. 중국은 양자키분배(QKD) 기술을 추진하는 반면, 미국은 양자내성암호(PQC)를 표준 알고리즘으로 중점 추진하며 견제에 나서는 등 양자보안 분야에서도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한국이 제안한 기술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제전기통신연합 표준화부문(ITU-T) SG17 회의에서 하이브리드 방식인 '양자보안통신(QSC)' 기술의 글로벌 표준화 작업을 진행한다.
미국, 중국 등 전세계 통신 강국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우리나라가 국제 표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국내 이통사 SK텔레콤이 고안한 QSC는 장단점이 뚜렷한 QKD와 PQC를 결합해 통신 전 과정을 보호하는 게 핵심이다.
SKT 접근법이 주목받는 것은 QKD와 PQC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QKD는 송·수신자가 암호키를 나눠 가진 채 양자 데이터를 주고받는 양자역학 기반 암호통신 기술로, 별도 하드웨어 장비가 필요하다. PQC는 양자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복잡한 수학 난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지만, 고도로 진화한 양자컴퓨터가 나타나면 뚫릴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평가 받는다.
중국은 양자통신을 중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QKD 중심으로 기술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공격적 연구개발(R&D) 성과에 힘입어 양자암호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QKD를 배제하고 PQC를 밀고 있다. 지난해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국가 보안 시스템 통신 보호를 위해 QKD 사용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SKT는 두 기술이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관계라고 봤다. 심동희 SKT 혁신사업추진팀장은 “QKD는 확실한 보안성을 제공하지만 별도 하드웨어 장비가 필요해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고, PQC는 알고리즘이 뚫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SKT 주도로 한국이 국제 표준으로 추진 중인 QSC는 통신망별로 다르게 접근해 두 기술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극대화한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유선망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서 인터넷망 구간과 교환국과 기지국 구간에는 QKD를 적용하고, 무선망 기반 기지국과 스마트폰 사이에는 PQC를 적용하는 식이다. 국방·금융·공공에는 보안성이 높은 QKD를 활용하고 일반 서비스 영역에서는 PQC로 범용성을 높인다. 두개를 동시에 적용한 멀티레이어 보안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아르노 타데이 ITU-T SG17 부의장은 “그간 두 기술 간 결합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SKT가 고안한 하이브리드 방식은 무척 영리한 선택”이라면서 “미국과 영국 등 다른 국가들도 양자암호통신 표준화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노 부의장은 브로드컴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로 ITU-T에서 보안 관련 기술표준을 맡고 있는 보안 전문가다.
아르노 부의장은 “회기마다 의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영역인 양자암호 분야에서 SKT가 처음으로 제안했고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표준화 과제로 채택했다”면서 “두 기술을 어느 단계에서 결합할 지가 이번 표준 개발에 있어 중요한 기술적 과제”라고 설명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