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여개 개인투자조합이 법률 위반으로 대거 제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벤처투자시장이 위축되자 투자의무 위반은 물론 특수관계인 투자, 업무집행조합원(GP) 잠적 등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부작용이 속속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비해 뚜렷한 관리 감독 체계가 미비해 엔젤투자자 불안이 커졌다.
13일 엔젤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개인투자조합 정기검사·수시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총 35개 GP와 57개 개인투자조합에 대한 법률 위반 사항에 대해 주의·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번에 지목된 조합들은 법률 위반에 따른 처분 사전통지에도 불구하고 잠적 등의 이유로 관리·감독 당국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투자자 민원이 제기되거나 결산 보고 등 법률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조합과 운용사(인력)에 한정해 조사가 이뤄졌음에도 적발건수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실제 중기부가 지난해 정기조사 대상으로 선별한 54개 GP 가운데 28개 GP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법률 위반 정황이 의심되는 조합만 조사했는데도 조사 대상 절반 이상에서 실제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이들은 법률 위반 정도가 경미한 결산·정기보고 누락 사유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엔젤투자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에 제재조치를 받은 조합 다수가 투자심리 위축으로 인해 투자 기업에 대한 회수에 나서지 못하면서 폐업 수순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에서 적발된 조합 다수가 공시 송달 방식으로 해당 조치를 수령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풀이된다. 폐업 수순에도 불구하고 관리 당국에서는 정작 이렇다 할 동향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인투자조합은 일반인이 스타트업이나 벤처·창업기업에 간접투자를 돕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벤처펀드나 사모펀드처럼 업무집행조합원을 통해 투자하면서도, 투자액에 대해 소득공제와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벤처투자가 확대되면서 유망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았다.
실제 지난해 중기부에 신규 등록된 개인투자조합 수만도 1000개에 육박할 정도다. 지난해 결성된 개인투자조합 규모는 6800억원 상당에 이른다. 중기부에 따르면 조합 결성액은 2018년 2035억원, 2019년 2832억원, 2020년 3324억원, 2021년 6278억원으로 매년 최고치를 경신했다. 신규 결성 조합 수도 2018년 302개에서 2020년 485개, 2021년 910개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매년 조합 결성 수와 규모가 급증하고 있지만 관리·감독 체계는 미흡하다. 조합 운용을 위한 요건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것은 물론, 투자 이후 관리·감독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심지어 조합 운용을 위해 필요한 교육과정을 허위로 모집하는 사설 단체가 수년째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관리·감독 사각지대다.
이번 조사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 GP뿐만 아니라 법인으로 개인투자조합을 운용하는 액셀러레이터도 여럿 포함됐다. 온비즈아이, 레이징, 골드아크, 시저스랩, 씨비에이벤처스 등 액셀러레이터가 법령 위반 결과를 공시로 송달받았다. 정부에 공식 등록한 액셀러레이터조차 통상적인 방법으로 처분 절차를 통지하기 어려울 만큼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했지만 뚜렷한 제재 방법은 없어 더욱 심각하다. 이번 조사에 따라 중기부가 실시한 제재 조치는 경고 또는 주의에 그쳤다. 액셀러레이터 등록 자체를 취소하는 등 실질적인 재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뚜렷한 제도적 근거가 없어서다. 그나마 개인투자조합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공시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제도 시행은 연말부터 가능하다.
액셀러레이터협회 관계자는 “그간 정부 노력으로 엔젤투자 시장 저변이 충분히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확대에 따른 내부 통제나 투자자 보호 노력 등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며 “정부의 자체 관리 여력이 부족하다면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 방식으로 엔젤투자와 액셀러레이터 시장을 자정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