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비 부담·투자 위축에...바이오벤처 파이프라인 '재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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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떡잎만 키우자.'

국내 주요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하며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 투자 위축 여파로 임상시험에 따른 운영비 부담이 커지면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주력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전략을 재정비하는 모양새다. 바이오벤처에 대한 벤처캐피탈(VC) 투자 심리가 내년 상반기까지 회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전략 수정에 한몫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바이오벤처들이 잇달아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하며 주요 후보물질 중심으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대거 갖추고 순차적으로 라이선스 아웃과 물질 개발 투자를 선순환해나가는 전략이 일반적이었다. 바이오 투자 심리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성공 가능성 높은 물질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이 바빠졌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기업 고바이오랩은 중증도 궤양성 대장염을 타깃한 'KBLP-007' 임상을 공식 중단했다. 호주와 국내에서 임상 2a상 중이었으나 대상자 모집이 원활치 않아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국과 호주에서 30명 대상자를 모집했으나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인플릭시맙 등 다른 치료법이 있어 대상자 모집이 지연돼왔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회사는 해당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면서 최소 50억원 이상 미래 개발비 절감 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전략 분야인 대사, 중추신경계(CNS) 질환 등 후속 파이프라인 고도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네오이뮨텍은 차세대 면역항암 신약 후보물질 NT-I7(성분명 에피넵타킨 알파)의 글로벌 임상에 속하는 △NIT-104(교모세포종) △NIT-106(고위험 피부암) △NIT-109(위암)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각각 임상 파일럿·1상, 임상 1b·2a상, 미국·유럽 임상 2상 단계였다. 추가 자금 지출을 막고 다른 파이프라인에 집중한다는 게 회사 판단이다.

회사는 주요 임상 단계인 췌장암 등을 대상으로 한 NIT-110(키트루다 병용, 2a상)과 신규 교모세포종 대상 NI-107(CCRT 병용, 1·2상), NIT-112 등에 집중하게 된다. 또 최근 전문가를 영입한 급성방사선증후군(ARS)에 대한 연구도 집중할 방침이다. ARS는 단시간에 방사선에 피폭돼 장기나 혈액세포에 손상이 가해지는 질환이다. T세포를 이용한 치료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퓨쳐메디신은 국책과제로 개발해온 녹내장 치료제 후보물질 'FM101' 임상을 중단했다. 임상 2a상을 마치고 2b상 진입을 준비해 내년 5월까지 2년에 걸쳐 과제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내부 자금문제로 환자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과제를 중단하고 대신 민간부담금을 환급받아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인 FM101 개발에 집중키로 했다.

NASH 치료제용 FM101은 HK이노엔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에서 임상 2상 중이다.

최근 바이오 투자 시장에서는 각기 다른 모달리티(치료기술)와 적응증에 대한 파이프라인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전략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지난 2년간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지만 바이오벤처 기업의 상장이 저조했던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기업 상장은 2020년 17건에서 2021년 9건, 2022년 8건으로 줄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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