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안전사고는 건설관련 종사자 한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이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고 다치게 하는 일터가 되었는지? 더군다나 짓던 건물이 무너지다니, 기가 막히는 상황이다. 이래서야 어디 해외에 가서 공사수주를 제대로 하기나 하겠는가? 온갖 제도 시행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제도가 없어서인가? 제도가 부실해서인가? 해외의 좋다는 여러 제도를 도입·적용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몇몇 운영되고 있는 제도의 속사정을 한번 살펴보자.
# 설계안전성검토. 설계안전성검토는 설계단계에서 건설안전을 고려한 설계가 될 수 있도록 시공 중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굴, 위험성 평가 실시 및 저감대책을 수립해 설계에 반영함으로써 위험요소를 설계단계에서 제거 또는 저감하는 활동이다.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내 대형 설계사 본부장과 얘기를 나눠보았다. “설계안전성검토는 잘 하고 있습니까? 안전사고를 예방하는데 실효성은 있다고 보십니까? 운영상의 애로점은 없습니까?” 답은 이랬다. “설계안전성검토는 용역사에 맡겨 진행합니다. 설계도 바빠 죽겠는데, 안전 관리 내용도 잘 모르는 걸 어떻게 직접 하겠어요? 용역사가 국토안전원 도장까지 받아옵니다. 실효성은 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설계 잘 나오고 설계 과정에 걸림돌이 안되면 되죠. 애로점은 국토안전원 도장 받아오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는 점이에요.”
# 안전관리계획서. 착공 전에 건설사업자 등이 시공과정의 위험요소를 발굴하고, 건설현장에 적합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유도함으로써 건설공사 중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안전관리계획서를 작성토록 하고 있다.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형 건설사 현장소장에게 물었다. “안전관리계획서의 실효성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은 이랬다. “안전관리계획서는 용역사 통해 작성합니다. 일종의 모범답안 같은 거지요. 실제 시공하면서 상세 사항이 변경될 수 있는데, 점검 나오면 안전관리계획서와 실제 현장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을 받습니다. 안전관리계획서 업데이트가 하나의 업무가 되었습니다. 서류작업 부담이 큽니다.”
# 사업장 위험성평가. 위험성평가는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해당 유해·위험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 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을 추정·결정하고 감소대책을 수립,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형 건설사 현장소장과 얘기를 나눠보았다. “건설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를 잘 활용하고 있으신지요? 실효성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소장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착공 시 최초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현장소장이 본사 임원 앞에서 보고해야 합니다. 이 단계의 위험성평가는 좀 두리뭉실하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기평가는 1년에 한차례 하는 데, 연초쯤에 합니다. 그리고 수시평가는 새로운 전문건설업체가 현장에 들어와 새로운 공종의 작업이 시작될 때, 해당 전문건설업체가 위험성평가서를 작성해 현장소장한테 보고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주요 작업이 있을 때나 또는 한달에 한번정도 수시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는 데, 이렇게 당면한 작업 직전에 시행하는 위험성평가가 구체성이 높고 실질적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위험요소 식별 과정에서 근로자의 참여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는 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요.”
현업 실무자들과의 대화 내용을 되짚어보면, 안전관리를 위한 여러 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설계안전성검토를 매번 해야하나? 시설물 유형별 및 공종별로 모범답안 수준의 체크리스트를 설계자한테 제공하고, 이에 따라 검토하도록 하면 안될까? 어차피 대부분의 내용은 건설공사마다 유사한 사항일테고, 오히려 사람에 따른 편차를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는데. 안전관리계획서와 최초 위험성평가는 통합해서 운용하면 안될까? 거의 비슷한 수준과 내용인 데. 취지는 이해를 하지만, 제도는 실용적이어야 하는데.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는 일종의 도구다.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 운용이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제도 운용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과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기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면, 실무자들한테는 그저 부담으로 만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시공사 현장조직을 보면 현실 파악이 가능하다. 시공사의 현장조직 인원 수는 제한돼 있는데, 제도상 요구되는 각종 안전관리 관련 업무를 위해 안전관리 인력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공관리 인력을 빼 돌려막기 하는 수 밖에 없다. 어떤 현장은 안전팀 직원이 시공팀 직원보다 더 많다고 한다. 이건 분명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시공과정에 안전이 있고 품질이 있는 것이지, 시공관리와 안전관리와 품질관리가 따로따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안전관리를 위한 여러 제도가 건설현장에서 시공이라는 본질적 업무에 잘 융화돼 작동될 수 있도록 보다 면밀한 업무 프로세스 설계와 이에 수반되는 여러 자원 투입의 적정 수준이 꼼꼼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 myazure@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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