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경제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산업공급망의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 우리는 요소수 수입 부족으로 물류 대란을 겪었다. 미국에서는 싸구려 반도체 칩 공급부족으로 자동차 공장이 멈췄다. 이제 주요 국가는 경제안보 강화를 앞세워 자국내 반도체·배터리·중요 광물 등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제범위를 뛰어넘는 막대한 현금지원으로 국내외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공급망을 재편한다.
하지만 급격한 공급망 재구축은 반도체·전기차 등 해당 제품의 무한경쟁 장기화, 중복 과잉 투자, 심각한 고급 인력난 등 우려도 낳고 있다. 현재 공급망을 둘러싼 기술 산업·통상 정책 이면에는 국가간 상호의존이 무기화될 수 있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경제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나 품목 조달이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이것이 무기화될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 표현을 빌자면, 공급망 전쟁은 기술 부문 상호확증파괴 무기 경쟁에 해당된다. 반도체를 예로 들면 설계·장비는 미국, 소재는 일본, 생산은 대만·한국, 후공정·시장은 중국에 집중됐다. 중국은 반도체 칩·장비의 최대 시장이지만 대부분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비대칭적 의존구조를 보인다. 반면 미국의 반도체에 상응하는 중국의 무기는 핵심 광물이다. 미국이 지정한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시장 1위인 광물은 33종에 달한다. 최근 중국 수출 통제 품목에 올라간 갈륨·제라늄도 미국 핵심 광물 중 하나다.
이런 산업 군비경쟁은 글로벌 공급망 구조를 바꾼다. 선진국은 기존에 '혁신은 안에서, 생산은 밖에서!' 식으로 접근했다면, 최근에는 '혁신도 안에서, 생산도 안에서' 식으로 접근 방식을 바꾸고 있다. 핵심 산업 공급망은 지역별 다극 체제로 변화한다.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에 아웃소싱하던 생산을 본국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미래는 중국이 기술 추격에 성공하느냐와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 강도에 크게 달려있다. 중국이 기술 추격에 성공하지 못해, 반도체 성숙된 기술에 고착화하면 선진국 시장용 생산을 위해 아세안과 인도에 중국과 분리된 반도체 생태계가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기술 추격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서구의 보호주의와 디커플링 정책을 고려할 때 기술 생태계와 표준이 분리되어 중국 중심의 생태계와 선진국 중심 생태계로 분리될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첫째, 공급망 재편 초점에 있는 첨단 산업 제조 역량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호·육성해야 한다.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바이오 등 첨단 산업 국내 산업 생태계 공동화 위험을 차단하고, 세계 최고 수준 혁신 슈퍼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 북미·유럽·동남아 등 해외 시장별로 생산·마케팅·유통이 집적된 지역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한 팀이 되는 첨단 산업 '팀 코리아'가 필요하다. 대규모 민간 투자와 이를 지원하는 정부 조세, 투자 세액 공제, 입지, 산업 규제개혁 등과 동시에 공급망 허리 역할을 할 국내 소부장 스타트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스케일업 지원,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스케일업 펀드 등이 대표 예다.
둘째, 국내 투자 확대와 함께 탈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반도체를 예로 들면 소재·장비 기업이 국내에 R&D 센터를 구축하면서, 소부장을 망라한 반도체 생태계에서 글로벌 테스트 베드·기술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주관 FDI IR팀 구성, 투자 인센티브 등을 논의할 수 있다.
셋째, 1990년대 초반 북방정책에 상응하는 글로벌 사우스(South) 전략이 필요하다. 미·중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의 비용 상승, 기술 진보 등 다양한 요인으로 중국에 집중된 공급망의 분산은 불가피한 경향이다. 더 나아가 배터리 공급망의 수요처는 미국과 유럽만 있는 게 아니므로 장기적으로 글로벌 사우스라는 거대 시장에 누가 공급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세계 산업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김계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kevinkim@kie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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