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 '킬러문제' 논란이 뜨겁다. 산업화 시절, 사람으로 북적이던 명동, 영등포의 역동성을 지금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밤 10시 경, 서울 대치동이다. 10대 학생과 학부모가 뒤엉켜, 차도 사람도 한없이 많이 흘러 다닌다. 학생 스스로 열정으로 '일타강사' 수업을 들으러 모이는 것인지, 부모의 교육열에 학생이 끌려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두 측면 다 존재하는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아무튼 8~90년대 역동적 한국경제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밤 10시 대치동을 방문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교육열, 학구열은 대치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쇼핑센터나 백화점은 조금이라도 집객력을 높이기 위해 문화센터를 운영하며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스마트폰 활용법, 꽃다발 만들기, 드럼교실, 체형 교정 프로그램, 갤러리 투어, 요리, 투자전략, 줌바댄스, 부동산 경매, 필라테스, 손수건 만들기 등 수업을 들으러 온 가정주부와 중년 남성, 노인층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아이도 엄마 손을 잡고 백화점 문화센터를 방문한다. 엄마가 줌바댄스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는 어린이 바이올린 클래스에 들어간다. 잠시도 가만히 놀고 있지 못하는 한국인은 심지어 백화점과 쇼핑센터에서도 수업을 듣는다.
그 뿐인가. 시골 군·읍 단위의 여성문화복지센터, 청소년문화센터를 방문해 보라.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도 자체 수영장과 교육시설을 갖추고, 자기탐색 프로그램, 초등 인문 프로그램, 놀이 심리 프로그램, 지역 역사탐험 프로그램, 탄소중립 교육 프로그램 등 수 십 개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돌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가히 교육열, 학구열 대국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50년간 유일하게 극빈국에서 선진국에서 올라선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교육열, 학구열 덕분이다. 평일 낮시간에 카페나 근사한 레스토랑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요즘 사람들 팔자 좋다', '우리 때는 안그랬다'고 비아냥 거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여전히 일면에 불과하다. 동네 주민센터와 문화복지센터, 쇼핑몰 문화센터에서 들뜷고 있는 교육열, 학구열이야 말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DNA다. 노량진, 대치동, 대구 수성구 학원가를 가득 채운 사람들만 우리의 교육열, 학구열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강약 조절만 잘 된다면 좋겠다. 자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나와 가족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이 DNA가 잘 작동하도록 소중히 키워 보자. 정년퇴임을 하고도 오랫동안 꿈꾸던 분야의 박사학위를 위해 유학을 떠났던 법조인, 신체 장애를 딛고도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던 학자, 그리고 평소 관심있던 환경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동네 문화복지센터의 '탄소중립' 클래스에 신청한 주부. 모두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이다.
얼마전 직장을 그만두고 50대의 나이에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선배를 만났다. 온라인으로 강의와 교재를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회계사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직접 학원가를 직접 방문, 수강하느라 시간과 비용 문제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환경이라고 했다. 새출발의 기대에 가득차 에너지가 넘치는 선배를 보며, 바로 이런 힘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같은 시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공부 루틴을 점검해주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시대다. 우리의 교육열과 학구열이 찬란히 빛날 수 있는 시대다. 도전하는 그대의 건투를 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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