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시대 도래와 함께 여러 형태 기술동맹이 추구되고 있다. 미국은 민주적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 선진화된 기술경제 국가, 안보와 정보 이슈에서 협력이 가능한 국가를 대상으로 기술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기술경쟁의 중심에 있는 디지털 기술은 경제적 사용과 안보적 사용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국제관계에 쉽게 영향을 미친다. 가치와 규범은 기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게 되어 기술독재, 프라이버시와 감시, 표현의 자유 등이 기술과 규범의 접점에 있는 이슈로 부상했다. 기술패권 경쟁은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이와 관련된 전후방 산업으로의 영향, 자원 독점과 필수 산업재 공급망 문제 등이 경쟁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기술경쟁은 각국의 경제, 안보가 총 망라되는 분야다. 기술개발과 협력, 국제 기술표준, 데이터 거버넌스 등 외교적 역량과 방향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2021년 부각된 공급망 불균형으로 세계 각국은 자체 공급망 복원 등 다양한 전략을 마련 중이지만 가치사슬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장 상황으로 독자적이고 고립된 정책추진은 불가능하다. 기술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쟁상대를 제어할 수 있는 규제전략 △강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지원전략 △부족한 기술과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협력전략 등을 적절히 구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부족한 분야가 많고 자체 시장이 작기 때문에 규제전략이 국내산업보호 명목으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협력전략은 핵심 기술분야에서 우리 강점을 무기로 약점이 보완 가능하도록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전환에 있어 일부 정보통신기술(ICT)에 대한 강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양의 한계, 접목되는 다양한 기술의 수준 격차, 인프라의 한계 등으로 선도국가의 입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기술의 경쟁력 우위 분야를 바탕으로 기술선진국과의 협력을 통해 과학기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지원정책과 연계해 신기술 연구개발, 공급망 투명성·탄력성 협조 등에 대해 다자제도를 통해 기술협력을 증대하는 방안이 유용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항상 경제성장과 번영, 안보의 확장을 통해 국가권력의 중심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도 경제성장의 도구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경제, 안보와의 중첩이 빠르게 확장되고 세계가 가치에 기반한 기술동맹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 및 협력도 가치에 기반한 방향성을 요구받고 있다. 주요 협력 대상국인 유럽국가는 기술에 의한 인권침해 및 기술 권위주의 등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며 미·중 경쟁과 중국의 불공정 경쟁체제로 자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기술동맹은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향후 기술경쟁은 단기적으로 현재 경쟁의 장인 디지털 기술과 네트워크, 점진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근본적인 디커플링이 야기될 글로벌 인프라, 장기적인 디커플링을 예고하는 과학기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치열한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 및 기술경쟁과 시장상황에 대한 실시간이며 유기적인 분석과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산업 및 통상과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며 국제정세 및 이와 연계된 기술이슈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진행돼야 한다. 분석과 예측, 이러한 정보의 유통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방향 정립이 필요하다. 경제적 수단으로써의 과학기술이 아닌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가치에 기반한 과학기술 발전과 협력의 방향성이 요구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업부품의 디커플링보다 혁신이나 과학기술의 디커플링은 효과가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영 경제사회연구원 기술정책센터장, 서울대 객원교수 jyp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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