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인한 산불, 폭염,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습니다. ‘메타어스(Meta-Earth)’ 기술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재해와 피해 변화 데이터를 예측해 각 나라의 책임 규모를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예외 없이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기후 위기 극복에 이바지하겠습니다.”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메타어스’라는 가상 세계에 다양한 상황의 지구를 구현하고 대규모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기후변화와 태풍으로 인한 호우 빈도 증가와의 관계,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의 일상화 시점을 추정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KAIST 연구진이 개발한 메타어스 기술은 자연계와 인간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디지털트윈 기술을 이용해 미래 지구에서 펼쳐질 기후변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시각화한다. 지역별 화석연료 사용량에 따른 해수면 상승, 지표면 온도 상승 현황을 가상의 지구를 통해 보여준다. 물, 식량, 에너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상호작용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각종 자연재해의 위험성이 어떻게 인간 사회에 영향을 주는지 예측한다.
김 교수는 “엘니뇨와 라니냐는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분포의 변화로 나타나는 기후 시스템의 역학 요소로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홍수, 가뭄, 폭염, 산불 등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면서 “현재 상당히 강한 엘니뇨가 발달 중이며 따라서 올 여름 우리나라는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서울과 포항 등에서 큰 피해가 있었고 홍수 강도와 빈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배수로 점검·개보수 등에 만전을 기울일 때”라고 덧붙였다.
기후변화 대응은 크게 완화와 적응으로 나뉜다. 선진국들은 완화의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대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선진국들이 적응 차원에서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파키스탄이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발생한 역대급 폭염에 이은 대홍수로 약 1720명이 사망하고 약 3300만명이 피해를 입었지만 책임 소재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김 교수는 “그동안 한 지역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느 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 추산하는 방법이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메타어스 기술은 각국의 책임을 수치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메타어스 기술에는 아직 댐, 제방, 지하수 이용 등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부분을 구현하는 면에서 과제가 남았다. 인간의 의사 결정에 물리법칙이 없다는 한계가 있고 관련 데이터 또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 KAIST 연구진은 국내외 연구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인공위성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할 것”이라면서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접목해 물리모델과 하이브리드를 이뤄 자연계와 인간계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메타어스를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