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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 1월 29일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김광호 삼성전자 상무 등 유공자들에게 훈장을 주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82년 1월 29일.

새해 초 영하의 맹추위 속에 제1회 기술진흥확대회의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청 중앙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의는 전두환 대통령이 주재했다. 이 회의는 5공화국 과학기술 우선 정책의 첫 신호탄이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과 국회와 정당 대표, 경제단체장과 금융기관 대표, 연구기관과 학계 대표, 산업계 대표, 언론인 등 각계 인사 234명이 참석했다.

오전 9시가 조금 지나자 회의 참석자들이 탄 검은 승용차가 줄을 이어 중앙청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직원 안내를 받아 회의장으로 속속 입장했다.

정각 10시. “대통령 각하가 입장하십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의 안내를 받아 회의장으로 입장했다.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 곧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이 먼저 기술진흥확대회의 개최 경과를 보고했다.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기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기술진흥확대회의를 대통령께서 구상하시고 회의 개최를 과학기술처에 지시하셨습니다. 앞으로 이 회의에서는 국가발전 목표에 부응하는 기술 개발과 기술인력양성 대책, 품질개선과 생산성 향상, 국가표준과 규격제도 확립, 시험 검사기능 강화 등 주요 과학기술 정책을 논의하겠습니다. 또 기술 개발 성공 사례와 해외 첨단기술 동향을 보고해 기술한국을 앞당겨 구현하겠습니다.”

이어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이 ‘1980년대 기술혁신 과제와 대책’, 허신구 민간기술연구소협회장이 ‘기업 기술개발현황과 대책’을 각각 보고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우리가 1980년대 선진 기술공업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과학기술 혁신, 고급두뇌 양성, 품질개선,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수출 확대의 관건인 품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술혁신을 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산업계, 과학기술계가 일치단결해 과학기술 진흥으로 제2도약을 성취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 고급두뇌 양성을 위해 유아교육부터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교육을 내실 있게 실시하고, 대학교육은 이론과 실습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들이 과학기술 한국의 제2 도약을 위해 국산품의 성능이 다소 미흡해도 국산품을 많이 사용해야 공장이 돌아가고 지속적인 품질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면서 “기술진흥확대회의는 과학기술 진흥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5공화국의 확고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반드시 기술 혁신으로 과학기술 한국을 구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에 앞서 ‘1980년대 기술혁신의 과제와 대책’ 보고를 통해 “정부는 국가발전 목표에 부응하는 기술 개발과 고급기술인력 양성대책을 적극 추진하고 생산과 직결한 핵심산업 기술을 집중 개발하기 위해 출연연구기관과 기업연구소를 적극 육성하겠다”면서 “기업과 공동으로 첨단 산업기술을 국산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고급두뇌 및 산업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기술인력에 대한 해외연수 확대와 함께 이공계 대학원을 고급두뇌 산실로 육성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민간기업연구소를 육성하기 위해 △세제와 금융 지원 △ 연구원의 병역특례 적용과 해외 연수 확대 △연구개발 출연금 지급 △대기업의 경우 1사1연구소 운영 △중소기업은 산업기술연구조합 체제로 첨단 기술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허신구 민간기술연구소협의회장은 ‘기업의 기술개발 현황과 대책’ 보고에서 기업이 꼭 해야 할 일을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기업이 꼭 해야 할 일은 기술 축적과 기술두뇌에 대한 우대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원의 인사와 급여 체계를 개선하고 기업 간 기술인력 스카우트 방지에 공동 대응을 해야 합니다. 기술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인력 중심의 산업 현장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특히 기업은 기술우선 경영 전략을 확립해야 합니다.”

기술혁신 성공사례는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이 컬러TV용 색신호 집적회로(IC) 개발 과정, 금성통신(현 LG전자)은 멜타변조 다중화 통신장비 개발, ㈜이화는 노르말파라핀 제조 과정을 각각 발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들이 발표한 기술혁신 사례는 당시 획기적인 첨단 기술이었다. 삼성전자공업이 발표한 컬러TV용 색신호 IC는 당시 미국과 일본 등 반도체 선진국들이 독점하던 분야였다. 삼성전자는 이 기술 개발에 성공, 한국 컬러TV 국산화에 크게 기여했다. 금성통신의 멜타변조다중화 통신기술은 유선과 무선 통신용으로 개발한 첨단 기술이었다. 이화의 노르말파라핀 제조는 석유화학공업 분야의 신기술이었다.

전 대통령은 이날 첨단 기술 개발에 앞장선 유공자 3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김광호 당시 삼성전자 상무에게 산업훈장 동탑, 은종관 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와 이규완 한국화학연구소(현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에게는 각각 국민훈장 동백장을 주고 이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기술진흥확대회의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열린 5공화국의 야심작이었다. 전 대통령에게는 평소 ‘과학기술 성패가 곧 우리나라 운영과 직결되고, 기술혁신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전 대통령은 1981년 10월 28일 청와대에서 이종오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제5차 경제사회 5개년 계획 과학기술 부문 실천계획을 보고받고 아래와 같이 지시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과학기술처가 주관하고 전 각료와 연구소 산업계 대표들이 참석하는 기술진흥확대회의를 마련하시오. 새해 1월에 예정한 모든 행사를 기술진흥확대회 이후로 미루고 이 회의를 계기로 한국 과학기술이 재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시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과학기술처는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유력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기술진흥확대회의 준비에 착수했다.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은 당시 “올해부터 과학기술처가 가장 바쁜 부처가 됐다”며 직원들에게 완벽한 회의 준비를 지시했다.

최영환 전 과학기술처 차관(당시 과학기술처 진흥국장)의 회고.

“기술진흥확대회의는 이른바 5공화국의 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한 주력 엔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출입국을 뒷받침한 ‘월례무역진흥확대회의’와 견줄 수 있는 행사였다. 대통령이 참석해서 회의를 주재하고 국무위원 전원과 국회, 산업계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였다. 회의 안건은 사전에 관련 부처 협의를 거치고 청와대 경제비서관실과도 긴밀히 논의했다.”

한기익 전 과학기술처 정책기획관(당시 과학기술처 진흥국 기술개발과장)의 증언.

“공직생활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이 업무의 주무과장이던 나는 회의 준비를 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몸은 고되도 과학기술 진흥과 고급 두뇌양성이란 범국가 정책을 추진할 수 있어 가장 보람있는 시기였다.”

과학기술처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형 회의인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

과학기술처는 기술진흥확대회의에 걸맞게 보고 내용을 슬라이드로 제작했다. 비용만 당시 170여만원이 들었다. 중앙청 중앙회의실에 대한 청와대 경호실의 보안 점검은 기본이었다. 회의 날 참석자들의 승하차 계획까지 치밀하게 세웠다.

한기익 전 정책기획관의 말.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 홍성원 과학기술비서관과 송옥환 행정관 등이 적극 지원해 주었어요. 회의 내용도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후 실천 사항을 점검, 실효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

기술진흥확대회의는 1987년까지 모두 12회 열렸다. 회의에서 다룬 정책 과제는 27건이었다. 이 회의는 대통령의 강력한 과학기술 진흥 의지를 바탕으로 각 부처와 기업들이 기술혁신과 고급두뇌 양성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정부는 1984년부터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실무적으로 지원하기 윈한 기술진흥심의회를 설치·운영했다. 과학기술처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관련부처 차관과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보고안건 심의, 이행 사항 등을 점검했다.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의 생전 회고.

“이 회의는 과학기술 진흥과 고급두뇌 양성이라는 국정 기조 아래 각 기업의 연구 상황을 구체적으로 점검해서 후속 대책을 매분기에 열린 회의에서 수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들이 혼연일체가 돼 과학기술 한국 구현에 주력했다. ”


기술진흥확대회의는 과학기술 한국의 재도약을 위한 구심점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