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21〉‘개체’ vs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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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생물학에서 ‘개체’는 다른 개체와 독립하여 행동하는 생명체로서 생존을 위한 최소 단위다. ‘관계’는 개체와 개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연결과 교류를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관계보다 개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플라톤은 현실세계는 가짜이고 이데아(본질)가 진짜라고 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데아가 있던 자리에 신을 두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니 현실은 참고 견디는 것에 불과했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신과 단절된 인간 개체가 어떻게 살지 이성과 과학에서 답을 찾았다. 신학자 캘빈은 천국에 갈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 믿고 생업에 충실해야 한다며 자본주의의 길을 열었다. 인간 개체가 세상의 중심이 되면서 과학기술로 자유를 키우고 풍요사회를 만들었다.

세상은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가진 자와 없는 자 모두 불안하다. 나의 발전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악용하고 이기주의가 판친다. 성장이 정체되면 인간 개체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인간은 공동체 구조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공동체는 강자가 지배하고 인간의 이기심은 빈부격차, 환경파괴, 갈등과 분쟁 등 관계를 악화시킨다. 공동체 안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관계 개선을 포기하고 비윤리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군사혁명, 공산주의 등 극단적인 방법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개체 중심의 덫에 갇혀 살아왔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우리는 뇌의 5%만 사용하고 있으니 나머지 95%까지 써야 한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천재는 5%의 영감과 95%의 노력으로 이뤄진다’ 등등 인간 개체의 경쟁을 자극하는 구호 속에 달려왔다. 학교에서 성적을 다투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취업하고, 직장 동료, 선후배와 끊임없이 실적을 겨룬다. 경쟁자 사이의 ‘관계’는 쉽게 파괴된다. 1등이 나오면 2등은 불행해지고, 합격자가 있으면 불합격자가 불행해진다. 부자가 있으면 빈자가 불행해진다. 경쟁에 이긴 자가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인간 개체는 무한경쟁에 의하여 건전한 관계를 놓치고 퇴보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손꼽는 탁월한 개인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과 공동체의 삶은 각박하다. 공동체의 구조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기에 각자 개체로서의 실력을 키우는 것에만 몰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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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가 이소연 作

과학기술은 인간 개체의 자유를 확장했지만 한계에 직면했다. 디지털시대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붕괴되고 모호해진다. 인간 개체는 만물의 지배자고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인간 개체의 불완전성과 한계를 인정하고 관계를 악용하는 이분법적 대립을 버려야 한다. 인간만이 중심이고 세상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그치고 불확실성을 포용해야 한다. 열린 결말, 나와 다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허용해야 한다. 작가가 정한대로 그의 작품이 해석될 필요가 없다. 여백과 행간, 틈새와 뒷장으로 밀려난 것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각이 필요하고, 불일치와 차이에 대한 관용이 중요하다. 불명료함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태도, 모호함을 참고 혼돈과 변화를 용인하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개체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달라져야 한다. 축구경기를 보자. 특정 팀의 스타플레이어가 득점을 많이 하여 우승하는 것이 중요할까. 생각을 달리해 보자. 승부보다 다양한 전략의 수립과 실행, 경기 전 과정의 역동성과 생동감, 상대팀의 득점을 막기 위한 치열함, 동료의 격려와 상대에 대한 예의 등 경기 내내 이뤄지는 건전한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인간 개체 발전이 관계를 착취, 악용, 파괴하고 불신을 가져오는 것을 끝내야 한다. 관계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자. 다양하고 건전한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디지털시대를 꽃피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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