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질녘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표현인 'L′heure entre chien et loup(the hour between dog and wolf)'에서 유래됐다. 해질녁 멀리 보이는 실루엣으로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을 이른다. 해질녘 노을은 아름답지만 그 시간을 분초를 다투는 치열함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전력공급을 담당하는 전력회사도 마찬가지다.
미래 세대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모든 나라가 지구적 미션인 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친환경 에너지다. 그러나 햇빛이나 바람 에너지는 가장 큰 장점인 자연에서 비롯한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으로 작용하는 에너지다.
우리가 필요할 때 햇빛이나 바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재생에너지가 전력 계통에 다량 유입되면서 기존 시스템과 달라지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세계적 현안인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고민하고 개발해야 할 기술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햇빛, 바람 등 재생에너지 발전 시간과 발전량이 수시로 달라지는 것을 변동성이라 한다. 이런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발전한 시간에 다 쓰지 못해 남는 전기를 저장해 뒀다가 햇빛이나 바람이 적은 시간에 저장해 놓은 전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재생에너지와 찰떡궁합 기술이다. 그러나 대규모로 사용하기에는 비싸고, 최근 보편화된 리튬이온배터리(LiB)는 원재료인 리튬이 희소물질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전기자동차용, 휴대용 전자기기 등 활용되는 수요처가 많다. 조만간 제한된 소재인 리튬이온배터리를 두고 다수 수요처에서 경합을 벌이게 될 것이다. 매장량이 많고 리튬을 대체하는 다른 소재 배터리 개발이 필요하다.
둘째 재생에너지 가운데 태양광은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등 하루에 두 번 전력 계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해가 뜨고 지는 짧은 시간 동안 태양에 의해 공급되는 전기가 갑자기 증가하거나 줄어드는 이른바 '덕 커브'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수력, 가스복합, 석탄화력 등으로 대체하는 일은 순발력과 정확성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과거 가스복합이나 석탄화력에 필요치 않던 유연한 출력 조절이라는 고급 능력을 요구한다. 거대하고 많은 설비로 구성된 발전소가 유연하게 출력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과 설비 개조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참고로 원자력, 가스복합, 석탄화력은 한번 끄거나 켜면 다시 끄고 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전 인허가가 필요한 원자력은 논외로 하더라도 꺼져 있던 상태에서 발전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까지 가스복합은 1∼2시간, 석탄화력은 6∼10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태양광과 풍력, 연료전지는 생산한 전기를 전력 계통으로 보내기 위해 인버터라는 장치를 사용한다. 인버터는 기존에 전기를 공급하던 원자력, 가스복합, 석탄화력과 달리 관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관성이 없는 전력 계통은 발전기 고장이나 송전 선로 단선 등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정전을 확산할 수 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가 많은 환경에서 계통을 운영하려면 관성을 보충해야 한다. 이런 기술로는 플라이휠 동기조상기, 그리드포밍, 인버터 등이 있다. 아직 기술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국산화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넷째 재생에너지와 ESS를 조합해서 사용하는 시스템은 아직 경제적이지 않다. 이에 당분간은 화력발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가스복합과 석탄화력은 사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로 수소와 암모니아를 이용한 화력발전이 거론된다. 화력발전을 단기간에 수소·암모니아로 완전히 전환하기에는 아직 기술이 부족하다. 이에 기존 연료에 수소와 암모니아를 섞고, 점차 전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 20% 혼소 기술도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다. 혼소 시 급증하는 질소산화물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기술도 동시에 개발해야 한다.
다섯째 각광 받고 있는 수소 에너지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일부에서는 수소 에너지를 만능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재생에너지가 매우 풍부해서 남는 전기가 있다면 이를 이용해 수소를 만들었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 만들어 둔 수소를 사용해서 연료전지로 전기를 만들면 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은 전기를 수전해서 기술을 이용해 수소로 변환할 때 시스템 효율이 60∼70%다. 이 수소를 연료전지를 이용해서 다시 전기로 만들 때 효율도 열 출력을 제외하고 최대 60%에 불과하다. ESS로서 수소 저장 효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이용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다. 태양광은 이용률이 약 15%다. 태양광 잉여전력을 이용해서 수소를 만드는 수전해 설비 가동률도 15%에 그친다. 지금은 에너지 저장 효율 50% 미만인 수전해와 연료전지 묶음은 경제적이지 않다. 그러나 부유식 해상 풍력 등 기술개발을 병행하고 잉여전력이 더 많아질 때 수전해 설비의 가동률을 50% 이상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그린수소를 이용한 에너지 저장 활용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그린수소를 수소·전기차에 공급해서 수송 분야에 우선 활용하는 것이 유효한 방법이다.
위에 언급한 것 이외에도 건물 유리창호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등 재생에너지 생산기술,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포함하는 고도화된 전력망 운영기술 등 개발해야 할 기술이 많다.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은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 요구와 국가 정책에 발맞춰 발전, 송·배전, 판매 등 가치사슬 전 주기에 걸쳐 탄소중립을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시급히 연구해야 할 기술 대부분은 전력연구원 R&D 포트폴리오에 반영했다.
전력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원자력, 해상풍력, 송전선 등 대부분이 1 단위 건설에 10년 이상이 걸린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건설 투자에는 최소 15∼20년이 소요된다. 따라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해야 하는 2030년까지 남은 6∼7년 안에 앞서 언급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환 분야 탄소중립 R&D 투자와 우수 연구인력 투입에 사회 전반의 지원과 응원이 필요하다.
이중호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KEPRI) 원장 jungho-lee@kepco.co.kr
〈필자〉 이중호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KEPRI) 원장은 전력과 에너지산업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이 원장은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 서울과기대에서 에너지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전에 입사해 2016년 본사 신사업추진처 지능형원격검침인프라(AMI) 총괄부장, 2019년 에너지신사업처 신사업개발실장, 2020년 경북본부 전력사업처장, 2021년 본사 기술기획처장 등을 역임하고 2022년 전력연구원장에 취임했다. 현재 한국에너지학회 부회장, ESG융합포럼 공동의장, 탄소중립위원회 기술기획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에너지절약과 효율향상, 2019년 지능형전력망 산업발전 유공으로 산업부 장관상을 받는 등 그간 성과를 인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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