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올 2분기 에너지 요금 인상 여부를 놓고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전기·가스요금 당정협의회'를 열고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을 유보했다. 이달 6일에는 에너지 전문가, 시민단체,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과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2분기 에너지 요금을 결정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1년 전 국정과제를 통해 '시장 원칙이 작동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전력 요금 체계'를 갖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치권은 전기요금을 인상했다가 내년 총선에서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여당이 한전의 적자가 왜 이리 심각해졌는지 모를 리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분기마다 언론에서 쏟아냈으니 이를 모른 채 외면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한전의 회사채 발행량이 늘어나 금융시장에도 부작용이 생긴 사례를 겪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한전채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조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한전채가 우리 경제에 위험한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정치권은 단순히 한전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바람에 에너지 소비의 왜곡이 더 심해졌다. 에너지 효율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점을 비판한 것도 바로 정치권이었다.
야당은 지난해 말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원칙대로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야당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다. 야당 역시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몸을 사리느라 조심스러운 것 같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력산업을 억누르고 있다. 전력산업을 담보 삼아 내년 총선에서 지지율 관리를 위해 본격 개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전기요금 결정권을 두고 간담회를 계속 개최하는 최근 사례가 좋은 예다. 그러나 정말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전기요금 결정권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아 보인다.
여당은 전기요금 인상 이전에 전력 공기업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의 '뼈를 깎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살을 찌워야 할 상황이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공기업의 끊임없는 투자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받고, 전기를 편하게 쓸 수 있었다. 공기업의 투자 여력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
정치권은 특히 올여름 '냉방비 폭탄'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지난겨울 '난방비 사태'를 겪으면서 민심과 여론이 악화한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여름 전기요금을 정상적으로 올리지 않으면 전력산업은 더 큰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대형 폭탄이 전력산업에 떨어지면 정치권은 또다시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다. 뼈까지 깎으면서 희생하고 있는 공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yeonjei@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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