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11〉정책혁신, 자기 무게부터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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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을 무한히 높이 지을 수 없는 원인의 하나는 자기 무게에 짓눌리기 때문이다.” 예전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다. 건축공학이 많이 발전했지만 이 제약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정책을 옥죄고 있는 것도 이것이다. 분명 이유가 있었지만 부풀 때로 부푼 기존 정책과 제도의 무게에 눌려 허덕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정부 예산은 늘어만 왔지 이것을 제대로 감량해 보려는 시도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물론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기억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알지만 기존 지원책을 줄이는데 누군들 반겼을 것인가. 그러는 사이 정책은 비대해졌고, 세상을 따라잡기에는 더 굼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건 반복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냥 이렇게 무한 팽창할 수 있다면 한동안 더 버텨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아직 성장기를 구가하고 있다면 시쳇말로 “어릴 때 찐 살은 결국 다 키로 간다더라”며 오늘 하루를 안도하며 버텨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안은 현실에서 멀다. 우리 경제와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진단한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처럼 비대해지고 효율적이지 못한 정책이 우리 경제와 기술의 경쟁력에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장 예산 부처가 중심이 돼 지출을 줄이기 위한 기존 사업을 폐지하거나 일몰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것으로 비대해진 지원사업과 기존 정책 및 제도의 무게를 덜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과신이다.

이것엔 세 가지 근본적 한계가 있다. 첫째 폐지와 일몰 대상은 대개 기존 사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예산의 몇 %란 목표만을 생각하면 그럴 듯 하지만 대마불사 법칙이 적용될 뿐만 아니라 그걸 다시 비슷한 논리를 적용한 사업으로 채운다면 결과는 '요요현상'의 한 예가 될 뿐이다.

둘째 혁신이란 작은 것 바꾸기가 큰 변화보다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규제혁신이란 구호가 이토록 무한 반복되는 이유를 알면 답이 보인다. 상위 규제나 얽히고설킨 규정을 그냥 둔 채로 특정 규제만 손보기 어려운 건 얼기설기 쌓아 올린 망루의 어느 막대기 하나를 건드리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 정책 다이어트에 나설 누군가가 없다는 점도 한몫한다. 상식으로 보면 국무조정실이 부처 업무평가나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실상을 보면 위원회 꾸려서 좋게 표현하면 자율이고 달리 보면 민간 위탁 정도인 이것의 결과 변혁에 시동은 고사하고 실행이란 애초부터 기대 밖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그렇다고 이들 두 부처만 탓할 일도 아니다. 정작 어디가 가장 비대해졌고, 어디서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할지 가장 잘 아는 곳은 각 부처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또는 수년 동안 예산을 들여서 한 일을 지금 와서 바꿔야겠다고 시인하는 건 난처한 일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것을 덜어내지 않고서는 허리를 굽히기도, 기지개를 켜기도 어려운 데도 버젓이 더 강화해야 할 것으로 국정과제에 끼어들기도 한다.

기대가 적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 부처는 늘 해 오던 일을 잘하는 것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얼마만큼 어려운 변화를 끌어냈는지, 자기 혁신에 얼마나 나섰는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상징적이겠지만 업무의 10%를 정책 혁신과 제도 개선에 쓰고, 예산의 30%는 신사업과 신정책에 쓰는 것처럼 10% 룰이나 30% 룰 같은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국무조정실이 있으니 부처 통폐합으로 자리가 난다 하더라도 혁신부를 신설할 수 없다면 대통령실에 혁신수석을 두는 건 어떨까.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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