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든 국가안보는 국민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된다. 지난날 총과 칼로 국가안보를 지켰다면 지금은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는 첨단 기술을 무기로 총성 없는 전투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기술안보'가 곧 '국가안보'인 시대에 살고 있다.
2019년 미국은 중국 화웨이와 계열사를 거래금지 기업 리스트에 올렸다. 화웨이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다. 화웨이는 미국 기업인 퀄컴·인텔·마이크론의 핵심 부품을 공급받지 못하게 됐지만 미국 역시 연간 110억달러 규모의 매출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무기로 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 장비'의 도면이 중국으로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전직 연구원과 협력사 관계자들이 돈을 받고 중국에 국내 첨단 기술을 넘긴 사건으로, 국가 안전 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전략기술'이었다. 지난 5년 동안 해외로 유출된 우리 기술은 83건에 이르고, 그 가운데 33건이 '국가전략기술'이라는 통계여서 여기에 우리 모두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국은 모두 자국의 이익을 지키면서 한편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핵심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 기술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서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핵심기술을 선점하는 기술안보가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첨단 기술없이 기술안보를 지키기 위해 대외 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일대일로', 핵심기술 자립을 표방하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인재육성과 국제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 팬데믹 충격과 같은 당면 과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세계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산업 전략을 수립하고, EU만의 연구혁신프로그램 Horizon Europe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첨단 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반도체·이차전지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해 발표했고, 최근에는 12대 분야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부 정책 방향은 국가안보 관점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가전략기술' 개발을 통해 기술안보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환경에서 국가안보를 지켜 나가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이 30조원을 돌파하면서 선도적인 R&D와 민·관 협력을 통한 효율적인 기술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R&D를 통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국가경쟁력의 지속적 강화를 위해 특허를 창출하고 관리·활용하는 '특허전략'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세계 특허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술 선점이 필요한 유망 분야를 발굴하고, R&D 결과를 강한 특허 창출로 연계할 수 있어야만 첨단 기술을 기술 패권 경쟁에서 핵심적인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특허전략개발원은 지난해 34개 '국가전략기술'에 '지식재산권 연계 R&D 전략'(IP-R&D)을 시범 지원하면서 특허전략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국가전략기술'에 특허 빅데이터 분석과 IP-R&D를 적극 활용한다면 세계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재우 한국특허전략개발원장 leejw0987@kist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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