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시론] 한국의 디지털 전략 성공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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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교수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은 뉴욕 구상을 통해 디지털 혁명이라는 전환기를 맞아 대한민국이 디지털 시대의 세계적 모범국가로서 디지털 비전을 세계와 공유하고, 우리가 추구해 온 자유·인권·연대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디지털 질서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정부와 경제·사회 전반을 디지털에 적합한 구조로 5년 안에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세계 최고 디지털 역량, 확장되는 디지털 경제, 포용하는 디지털 사회, 함께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혁신하는 디지털 문화 등 5대 전략 19대 과제로 구성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이하 디지털 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전략 발표 후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정부는 과제로 디지털 플랫폼, 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디지털 콘텐츠 등 세부 분야별 디지털 정책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들 5개 마스터플랜의 내용과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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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플랫폼 발전방안

먼저 '디지털 플랫폼 발전방안'이다. 지난해 12월 29일 발표된 계획으로, 혁신적이고 공정한 플랫폼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립됐다. 플랫폼 생태계의 건전한 성장 환경 조성,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는 토종플랫폼 육성, 플랫폼을 둘러싼 부작용 해소와 시장의 역동성이 저해되지 않는 한도에서의 민간 주도 자율 규제 추진이 내용이다.

또 거대 플랫폼의 독점력 남용행위 등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세부 과제로는 신구산업 간 갈등으로 시장 출시가 가로막힌 서비스에 대해 갈등해결형 규제 유예와 갈등 조정기구를 마련하며, 플랫폼 자율기구의 근거를 전기통신사업법에 신설하며, 업종·분야별 자율규약 마련과 자율규제 참여 특전 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지원한다. 또한 플랫폼 특성을 반영한 '독과점 심사지침' 제정과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개정한다.

결국 정부는 플랫폼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추진하되 규제는 자율 규제 및 법적 규제를 병행하기로 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율규제보다는 법적 규제에 힘을 싣고 있는 모습인데, 과도한 규제우려를 해소해야 할 것이다.

◇데이터산업진흥기본계획

그다음 '데이터산업진흥기본계획'이다. 올해 1월 26일 열린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에서 의결된 계획으로, 향후 3년 동안 실시하겠다는 국가데이터정책이다. 3개 세부과제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데이터의 생산·개방·공유를 추진한다. 특히 공공데이터 개방을 행정뿐만 아니라 입법·사법 분야까지 확대한다. 두 번째 과제는 민간 중심 및 민간 주도의 데이터 유통·거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누구나 민간·공공 데이터를 쉽게 검색하고 가치평가·품질인증 정보도 함께 접근할 수 있는 '원(ONE) 윈도우'를 구축하는 한편 데이터 거래·분석 기업 3만5000개, 데이터 거래사 1000명을 육성함으로써 50조원 규모 데이터 시장으로의 성장을 달성한다. 세 번째 과제는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위해 민·관 합동 법제정비단을 운영해서 데이터 활용을 저해하는 규제를 정비하고, 거대 플랫폼 보유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접근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계획은 데이터 공유·개방, 과감한 데이터 규제혁신, 데이터 분야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 등 3개 축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공공데이터 개방에 입법·사법까지 포함된 점과 민·관 합동 데이터규제 정비계획은 상당히 야심에 찬 계획으로, 관련 기관의 협조가 없으면 기대한 성과를 내는 데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AI 일상화 및 산업 고도화 계획

셋째로 'AI 일상화 및 산업 고도화 계획'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에서 의결된 계획이다. 디지털전환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AI는 언어·음성·시각 등 단일지능을 넘어 복합지능 및 초거대 인공지능으로 발전하고, 기존 AI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AI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AI 기술력은 최고 대비 89% 수준에 불과하고, 기업현장·국민생활 등에서의 AI 활용은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대화형 생성 AI인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글로벌 정보기술(IT) 생태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계획이다.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AI 10대 핵심 사업에 올해 약 7129억원을 투입한다. 주요 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AI를 국민 일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국민 AI 일상화를 위해 '독거노인 AI 돌봄로봇 지원' '소상공인 AI 로봇·전화상담실 도입' 등을 추진한다.

두 번째로 초격차 AI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8대 분야 학습용 데이터 구축·개방 등 AI 기반 시설을 제공하며, 신뢰성 부족 등 현재의 AI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AI를 개발한다. 세 번째로 AI 법·제도 정립을 위해 '디지털 권리장전', AI 산업 육성 및 신뢰성 확보를 뒷받침하는 'AI기본법' 'AI 신뢰성 검·인증 체계' 'AI 영향평가 체계'를 마련한다.

AI 기술개발, 인력양성, 법제도 정립 이외에 전 국민이 AI를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점이 의미가 있지만 챗GPT와 같은 대화형 초거대 AI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AI 분야에서 우리의 특장점은 무엇인지, 어떤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을 것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세계 3위의 AI 대국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저작권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데이터 활용 규제부터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블록체인 산업진흥 전략

넷째로 '블록체인 산업진흥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24일 제15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이 체감하는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공공 서비스의 효율적 개발을 위한 표준개발 도구를 마련하는 한편 산업 고도화를 위한 핵심기술 개발과 검증 추진이 주요 내용이다.

국민 체감형 대형 프로젝트로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배지 플랫폼, 블록체인 기반 공적지원금 연계 관리 시스템을 추진한다. 또 대체불가토큰(NFT)의 법적 성격, 소비자 보호 방안 등 시장이 필요로 하는 규제 개선의 청사진을 담은 'NFT 규제혁신 로드맵'을 마련한다.

가상자산과 분리해서 블록체인을 육성하고, 가상자산 성격이 없는 NFT의 규제혁신을 통해 산업적 지원을 한다는 정부의 입장 발표는 의미가 있지만 상당수 NFT가 가상자산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금융위원회 가상자산전략과의 정합성 유지가 필요하다.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산업혁신 및 글로벌 전략

다섯째로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산업혁신 및 글로벌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18일 발표된 계획이다. 미디어·콘텐츠 판도를 흔들고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미래 플랫폼으로 대두된 메타버스, 젊은이들이 무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크리에이터 미디어 등 3대 미디어를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OTT의 글로벌 성장을 목표로 글로벌 OTT 어워즈를 통해 세계에 홍보하고 OTT-제작사 컨소시엄 제작과 해외 진출, 현지화를 지원한다. 메타버스 핵심·애로 기술을 개발하고, 부산월드엑스포 등을 메타버스 미디어의 장으로 활용한다. 자율공유형 경력관리 시스템을 통해 구인과 구직을 연결하고, 수익 배분을 투명하게 제공해서 크리에이터를 지원한다.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분야가 국내에서 글로벌, 현실세계에서 가상공간, 방송사에서 개개인 창작자로 각각 확장되는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OTT, 메타버스, 크리에이터 미디어라는 3대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중심으로 맞춤형 정책 지원을 한다는 점이 신선한 시도로 보인다.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고, 이에 더해 최고의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는 한국이 플랫폼 분야에서도 리딩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전략 시사점은

이처럼 디지털 전략의 총론과 각론을 불과 4개월에 모두 완성할 정도로 한국 정부가 디지털전환을 기민하게 하고 있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이 디지털 선도국가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시사점도 도출할 수 있다.

먼저 정부가 계획 수립에 민간 전문가와 업계의 광범위한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는 업계와 전문가로 분과위를 구성하고 정례적인 회의를 통해 의제를 발굴해 왔다. 현실적으로 민간의 수요에 맞추어 집행 가능한 정책이 개발된 것이다.

둘째 계획이 기술개발, 인력양성, 시장 및 판로 지원, 법제도 개선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는데 SWOT 분석 등을 통해 우리가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전략도 필요하다.

셋째 계획이 범정부 차원의 계획임에도 간사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제가 많고 타 부처 과제는 미미하다. 관련 부처가 별도의 법제와 조직을 두고 정책을 발표하면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부처 간 협조 부족도 이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전략위, 국가데이터정책위 등의 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계획의 실행이다. 계획은 많지만 계획이 실행되고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파악이 어렵다. 실행이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떤 평가와 환류가 이루어지는지도 계획에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K-콘텐츠, K-반도체를 제외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디지털의 퍼스트 무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챗GPT의 폭발적 인기는 충격으로 온다. K-플랫폼, K-데이터, K-AI 시대를 위해 민·관·학의 지혜를 모을 시기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dysylee@korea.ac.kr

〈필자〉이성엽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거쳐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 정보통신전략위원회와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및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현장 경험과 법, 정보통신기술(ICT), 데이터·AI 분야 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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