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시대를 거치며 집이 교환가치로만 치부되기 시작하며 집으로 가는 여정은 늘 험난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았겠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집으로 가는 길은 집값이 주는 좌절과 쓰라림의 연속이었다. 상대적 좌절감이 커지면서 포기보다 오히려 탐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됐다. 우리 모두는 늘 마지막일지 모르는 황금빛 신기루의 끝을 붙잡기 위해 서로 다투어 그 길로 들어섰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가격은 하우스푸어, 벼락거지, 부동산 영끌족이란 신조어를 낳았다.
본래 집은 인간의 삶과 생명의 지속성이 이루어지는 중심 장소로, 오래 전부터 우리에겐 하나의 소우주로 인식돼 왔다. 집의 어원은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했다.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오이코스는 가족을 넘어 하나의 경제 단위를 의미하며, 넓게는 생태나 환경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영어에서 쓰이는 에코(eco)라는 접두어가 바로 오이코스에서 유래해 경제(economy)나 생태(ecology) 등 단어에 사용됐다. 경제 기본 단위로서의 가족이란 개념이 있는 집은 함께 거주하며 자연과 공생하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집은 어떠한가.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바뀌고, 이제는 1인가구가 우리사회의 대세가 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는 가장 많은 31.7%를 차지했고, 2인 가구(28.0%)를 합하면 1~2인 가구 비중이 60%에 육박한다.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맹그로브 숭인은 1인가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코리빙하우스다. 24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은 우리가 알던 기존 주택의 기능과 가구·사물들을 혼자 사는 것을 즐기면서 함께 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새롭게 해석한 공유주택이다. 이 주택을 설계한 TRU건축사사무소 조성익 대표가 설계 후기처럼 저술한 책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실험'의 마지막 결론부에 “의식주'린'”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 단어는 의식주 다음으로 중요한 '린'이 아니라 의식주를 묶는 공동의 가치로서 함께 사는 이웃인 '린'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나 청담동이 경제적 가치 척도로서 '어디서 사는가'의 상징이라면 청년 1인가구에 대한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맹그로브와 같은 공동체성에 기반을 둔 공유주거는 집에 대한 새로운 화두로서 '누구와 사는가'란 질문이 이제 우리에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주거권을 확보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가 최근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달팽이집 시리즈를 통해 청년 주거권 확보 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달팽이 유니온', 지역마다 공동체주택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키우는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지속적으로 공동체 주택을 기획하고 공급하는 '하우징쿱', 노량진 고시원을 흥미로운 청년주거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서울소셜스탠다드의 '청운광산' 사례와 같이 누구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새로운 공간실험은 집이 가야 할 또 다른 길을 보여 준다.
우리는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답은 어디에 있을까. 마르틴 하이데거는 저서 '거주하기'에서 집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방식이며, 거주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삶에 우선되는 지금의 집 개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주의 위기가 일상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말미암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감이 가까이 와 있는 상황에서 집으로 가는 그 길은 이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노 건축가 부부가 50년 넘게 집에서 과일 50종과 채소 70종을 기르며 살아 온 생을 다룬 '인생 후르츠'란 다큐멘터리 영화의 마지막에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란 문구가 자막으로 흐른다. 삶의 지혜를 속삭여 주는 그런 집이 그리운 세상이다. 삶을 바꾸는 집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날을 꿈꾸며 소유와 욕망을 넘어 모두에게 집이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희망의 공간이 되길 바라 본다.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ybreigh@au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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