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빨간빛 온기로 찬란했던 크리스마스 도심과 새해를 빛나게 했던 루미나리에는 전과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남산 서울타워와 33개 한강 교량 조명도 한 시간씩 빨리 조명을 소등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난방온도를 1도씩 낮추고, 기업과 가정도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 '에너지 다이어트 10'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겨울은 한창이고 상황도 녹록지 않다. 느슨해진 제트기류와 3년째 지속 중인 라니냐가 세계에 기상이변을 속출시키고 있다. 유럽은 올해 전례없는 '겨울 더위'를 경험하고 있는 반면에 북미 전역에는 지난달 체감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한파 폭풍, 이른바 '폭탄 사이클론'이 불어닥쳤다. 옆 나라 일본에 2m에 달하는 폭설이 왔듯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도 북극 한파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사이 전기, 가스와 같은 겨울철 필수 에너지 요금도 올랐다. 이달 9일 어린이집, 노인복지시설, 의료기관 등 전국 취약계층 사회복지시설 현장을 방문 점검하니, 추운 겨울에도 난방비 절감을 위해 옷을 한 겹 더 껴입는 모습이다. 곧 우리 고유 명절 설날인데 에너지 취약계층의 따뜻한 겨울 명절 나기를 도우려는 정부 고민도 점차 깊어간다.
이에 정부는 4일 온 국민이 든든하고 풍요로운 명절을 지낼 수 있도록 '설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취약계층의 민생부담 경감을 위해 전방위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전기요금의 경우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약 340만호에 약 1186억원 요금할인을 추가로 지원하고, 가스요금은 취약가구 요금 감면폭을 약 3000~1만2000원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에너지 비용 상승을 고려해 올해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지난 해 대비 1만원(18만5000원→19만5000원) 인상했다. 등유바우처 단가도 2배 이상 확대(31만원→64만1000원)하고 연탄 쿠폰도 추가 지원한다.
더 나아가 정부는 추가 지원책도 검토해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정부는 사회복지시설 대상으로 에너지 요금을 추가 할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기요금은 30% 할인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가스요금의 경우 별도 요금지원이 없어 난방비 부담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이에 사회복지시설에 적용되는 요금을 현재 '산업용'(32.15원/MJ) 요금 대신 '일반용2'(18.54원/MJ) 요금으로 변경 적용해 시설당 월 평균 25만원의 요금을 할인 지원을 추진하고자 한다.
대통령 특별 지시사항으로, 지방비 지원 복지시설에 대해서도 국비 지원 복지시설 지원 수준으로 난방비 지원이 확대될 수 있도록 난방예산을 확대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명절을 지나서도 우리나라에 온기가 지속되게 하기 위해서는 대내외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안보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단단한 기반 속에서 미래 도약의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신년 에너지 정책 업무계획'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큰 틀은 유지하되 4개 주요 축을 세워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고 선진화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첫 번째 축은 원전 생태계를 완전 정상화하는 것이다. 계획된 원전을 차질없이 건설해 생태계를 강화할 것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와 올해부터 3년간 매년 1기의 원전 준공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3조5000억원 일감을 공급하고 원전 인력 공급에도 활기를 되찾고자 한다.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원전 계속 운전(2030년까지 총 10기)도 추진한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원전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원전소통 지원센터도 신설한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원전 혁신기술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축은 흔들림 없는 에너지 안보 강화다. 이를 위해 에너지와 핵심광물 공급망을 확충한다. 가스·석유 등 비축 용량을 대폭 늘리고 리튬, 니켈 등 10대 전략 핵심광물을 개발·확보해 이차전지, 전기차 등 첨단 수요산업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동반 확대해 에너지 자립도를 제고한다. 재생에너지 변동성 완화를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유연성 설비를 확충하고 기업의 RE100 달성 지원을 위해 3000억원 규모 투자 펀드를 조성한다. 올해 20조원을 투자해 에너지 공급설비도 지속 확충할 것이다.
세 번째 축은 에너지시스템 혁신 추진이다. 시장원리에 기반해 에너지 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 가격 기능을 회복하고, 소비 효율화를 유도할 때 에너지 공급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에너지 효율 관리 사각지대인 중소·중견기업에 효율 혁신을 지원하고 가정용 원격검침인프라(AMI) 등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구조를 구축하고자 한다. 효율관리 제도에 대한 법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안에 '에너지이용합리화법'도 전면 개정할 계획이다.
마지막 축은 원전의 수출산업화와 5대 에너지 신산업 성장동력화다. 3조원 규모 이집트 엘다바 원전건설 프로젝트 수주 성과에 이어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도 수출성과를 본격 창출하기 위해 총력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수소, 해상풍력,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고효율 기자재, 스토리지 등 5대 에너지 신산업을 기반으로 에너지 르네상스를 이루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기술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자 한다.
예측하기 힘든 기상이변과 위태로운 글로벌 에너지 시장 상황은 우리 경제구조를 취약하게 하고 있고, 이는 당장 해소되지 않을 고정변수가 됐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제반여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변해야 한다. 튼튼한 에너지 안보를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개인의 효율혁신 노력이 모여야 우리가 올해와 다가올 에너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국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시 한번 신발 끈을 동여매자.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필자〉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은 윤석열 정부의 초대 에너지 차관이다. 1964년생으로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행정고시 31회에 합격한 후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약 30년간 산업·에너지 분야에서 여러 보직을 맡았다. 산업부 전신인 지식경제부에서 운영지원과장, 정책기획관, 정보통신산업국장을 역임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정보통신산업국장, 소프트웨어정책관으로 일했다. 이후 산업부 에너지자원정책관, 산업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고위직을 거쳤다. 2018년 공직 은퇴 후에는 한국동서발전 사장,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학협력교수,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등 직책을 맡았다. 지난해 5월 이후 산업부 2차관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