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요 작가는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여기는 감정 속에 얼마나 많은 폭력, 부조리가 내재할 수 있는지 일깨워줬다. 본인의 외면을 드러내길 끝내 거부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세세하게 펼쳐 나갔다. 그의 글쓰기가 일종의 탐구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수상 소감
▲한 해를 뜻깊은 소식으로 마무리를 짓게 됐다. 여러모로 감사하다.
-작품 소개
▲시놉시스만으로 줄거리를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슈퍼스타가 기르는 로봇 개가 나오고, 로봇 개의 설계사가 있고, 설계사의 동생은 설계사를 감정적으로 학대한다. 한편 슈퍼스타의 전 애인은 자살한 상태인데 그 죽음은 로봇 개와 설계사가 얽혀있다. 이들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여러 대화가 오가면서 진상이 드러난다. 일종의 심리 미스터리다.
-집필 계기
▲움베르토 에코가 쓴 '유명인을 만났을 때 반응하는 방법'이라는 칼럼이 있다. 사람이 친분 없는 유명인을 마주칠 때 얼마나 무례해지느냐에 대한 것인데, 사실 유명세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알려진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은 아니다. 호감에 기반한 관심조차 나쁜 방향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애정과 호감이 반드시 선하거나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호의와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은혜라고, 혹은 일종의 청구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뒤틀린 애정이나 어그러진 사랑이라는 수사가 적용되긴 하는데, 그런 식으로 우회로를 만들면 세상에 잘못된 감정이란 없을 거다. 결국엔 소설을 통해 감정과 애정의 본질적인 징그러움이 윤리와 어떻게 뒤엉키는지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 같다. 방점의 상당 부분이 윤리에 찍혀 있기 때문에, 소설의 테마는 감정의 윤리, 영원한 타자의 윤리라고도 할 수 있다.
-수상 의미
▲느끼기에 한국 SF 문학은 세 개의 테마가 벤 다이어그램처럼 겹친 채 주류 영토를 이룬 듯 하다.
하나는 연대와 다정함, 공감, 선의, 환대, 돌봄, 다양성, 소수자 등 각광받는 진보적 수사가 휴머니즘과 어우러지는 영역, 둘째는 SF의 도구를 알레고리로 사용하여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말하는, '참여SF'라고 칭할 법한 영역, 세째는 관료제나 대학원생이나 직장인이 중심축으로 등장하고, 일상적인 한국인의 삶에 약간의 트위스트를 주는 방식으로 소소한 감정의 진폭을 자아내는 영역이다.
셋째에 대해서는 '일상 사회파' 혹은 '관료제·사회 드라마' 같은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자의적 분류와 작명이니까 깊이 다루진 않겠다.
대중적 호응을 얻거나 문학상 등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얻는 작품은 대체로 저 범주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서가 거의 와닿지 않았고, 겪어온 삶 또한 거기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다소 혼란을 느꼈다.
“내 현실 인식과 세계관이 잘못된 것인가? 독자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이런 방식으로 다뤄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거기에 부합하는 글을 써 보기도 했는데 결국엔 제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상은 “그렇게 써도 된다”는 확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작가
▲모든 작가 중에서 셋을 고르자면 포크너와 윌리엄 버로스, J. G. 밸러드다. SF 작가만으로 범주를 좁힌다면 밸러드와 베스터, 부졸드, 그리고 할란 엘리슨이다.
수상작과 가장 관련이 큰 작가는 밸러드고, 총체적인 글쓰기에 대해서도 밸러드입니다. 백분율로 따지면 포크너가 25, 밸러드가 30, 버로스가 5, 나머지 모두가 도합 40, 이런 식으로 나올 것 같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통해 밸러드를 처음 접했다. 번역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드렁하게 읽고 있었는데 중간에 '크래쉬'를 소개하는 대목이 있었고, 그걸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이 이미 영국 작가의 손에서 쓰여졌다. 그러니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생각했던 것이 이미 정확히 거기에 있었다”는 서술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크래쉬는 물론이고 '하이라이즈', '헬로 아메리카, '물에 잠긴 세계' 등 밸러드의 장편을 통해 많은 위안과 격려를 받았다. 기술 체제와 테크놀로지에 내재된 신경증과 그 반대항으로서 원시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향후 계획·목표
▲소망을 뻗어 본다면, 소망은 항상 크고 구체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휴고 상이나 로커스상 수상 같은 것 말이다. 믿지 않는 곳에 도달할 수는 없기 마련이고, 아주 먼 곳을 믿어야만 한 블록 앞에라도 도착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소망에는 값이 없으니까.
-문윤성 SF 문학상 의견
▲한국 SF는 2016년까지만 해도 우울한 자조같은 단어였다고 생각한다. 행복한책읽기 총서가 발간을 멈췄고, 불새가 비틀거리다가 끝내 사라졌고, 악스트 사태도 있었고, 보르코시건 사가 총서도 부진했는데 6년 사이에 여러 가지로 상황이 바뀐 게 느껴져서 무척이나 기쁘고 즐겁다. 문윤성 SF 문학상이 오래도록 남아 SF 작가 지망생의 등용문이자 신인 SF 작가의 마중물이 되길 기원한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