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유동성이 메말랐습니다. 큰 위기입니다.”
새해 재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고공행진하던 원·달러 환율은 하락 반전하며 퍼펙트스톰(복합 경제 위기) 공포에서 벗어났지만 글로벌 경기후퇴에 직면했다. 수출과 내수 모두 꽁꽁 얼어붙었다. 자본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회사채 발행 등 투자 재원 유치는 사실상 막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인 이상 기업 240개사(응답 기준) 대상으로 '2023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상유지(68.5%)와 긴축경영(22.3%) 응답 비중이 90%를 넘겼다. 확대경영은 9.2%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74.2%는 우리 경제가 정상궤도로 회복되는 시점을 2024년 이후로 내다봤다. 2025년 이후라는 응답도 22.9%로 높았다.
또 응답 기업의 43%는 '현재 자금 사정이 어렵다'고 답했다. '내년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기업도 50.5%에 달했다. '돈맥경화' 심화에다 투자마저 녹록치 않은 '흑빛 전망'이 팽배한 셈이다.
재계는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보유 현금을 늘리고,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00대 기업 대상으로 한 '2023년 국내 투자 계획'에 따르면 약 절반(48%)이 '투자계획이 없다'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투자 계획을 수립한 기업 가운데선 '올해보다 줄이겠다'가 19.2%로 '투자를 확대하겠다' 13.5%보다 5.7%포인트(P) 높았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예상된다”면서 “환율 변동이나 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경영 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고, 최대한 많은 현금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큰돈이 들어가는 투자를 미루거나 백지화하려는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복합위기 돌파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펀딩 활성화로 민간 투자를 이끌고 각종 규제 완화로 산업 동력을 이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전략 산업인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에 차별화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관건은 속도다. 아무리 좋은 처방이 있다 하더라도 사후약방문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복합 위기는 한편으로 기회다. 비가 온 뒤 땅이 굳듯 경쟁국과의 격차를 확대할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간주도·기업주도라는 말이 있지만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기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복합 위기 돌파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