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ESG 평가등급에 반영된 환경 지표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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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켐토피아 대표

어느 때보다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30년부터 국내 모든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ESG 공시를 해야 하고 한국거래소 ESG 포털을 통해 기업의 ESG 등급이 일반인에게도 공개되기 때문이다.

ESG 평가지표는 600개가 넘는다. 평가지표 가운데 환경, 산업안전 및 보건 항목은 40% 안팎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회(Social) 부문의 일부 지표로 포함돼 있는 산업안전 및 보건항목은 올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과 연계돼 있어 기업이나 사회에서 느끼는 비중은 실제 평가 수치보다 훨씬 크다.

이러한 절박함에도 기업의 환경안전보건 ESG 준비 상황은 미흡하다. 중소기업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9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약 60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측정한 ESG 성과지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환경분야 ESG 점수는 100점 만점에 40점에 불과했으며, 산업안전 및 보건 점수는 마이너스였다. 또한 올해 10월 약 1만40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단의 자가진단에서는 기업의 50% 이상이 환경(E) 부문에서 미흡 등급인 4~5등급에 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중소기업에 국한된 것일까.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ESG 환경안전보건 성적은 어떠한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ESG 환경안전보건 성적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공개하는 ESG 보고서를 보면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개별 기업이 환경안전보건 분야에서 우선 대응해야 할 키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환경안전보건에 대한 지향점이나 중간 성과지표조차 설정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 평가기관이 무엇을 근거로 기업의 환경안전보건을 평가한 것인지에 대한 투명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20대 근로자가 재료혼합공정에서 사망한 사고로 말미암아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한 기업의 사례를 보면 해당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번 사고 이전에도 잇단 산재사고가 있었지만 해당 기업의 ESG 평가등급은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기업들의 ESG 보고서에서 환경(Environment) 부문은 기후변화, 특히 탄소저감 내용을 주로 기술하고 있다. 환경부문 지표가 기후변화 외에도 에너지·용수·폐기물을 비롯해 유해물질 배출, 환경규제 준수, 공급망 환경성 평가 등 다수 항목이 포함돼 있음에도 탄소저감이 유일한 목표이자 지표인 것처럼 제한적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 등급만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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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켐토피아 대표

그러다 보니 제대로 ESG를 준비하지 않은 기업도 ESG 환경안전보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홍보에 활용하는 그린 워싱 사례를 막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문제는 ESG 평가기관의 책임도 있다. 전 세계에 100개 이상의 ESG 평가기관이 있고, 국내에도 다수의 평가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평가기관은 기업이 제시하는 데이터와 일반에 공개된 기업공시 정보, 미디어정보, NGO 자료 등에 근거해서 평가한다. 환경안전보건과 관련해 개별 기업이 처한 실재적인 상황과 어려움, 문제점 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ESG 평가기관이 기업 업종별 환경, 산업안전 및 보건에 대한 키 이슈와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환경안전보건 분야 전문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와 관련한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내년에는 주요 선진국 중심으로 기후변화를 넘어 공급망 관리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산업부문별 ESG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ESG 환경안전보건에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산업분야별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이에 근거해 개별 평가를 하되 개별기업별로 명확한 키 이슈를 발굴해서 목표와 성과치를 계량화하고, 이에 맞춘 정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경안전보건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시스템 도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또한 유럽발 공급망 실사 이슈까지 고려한 공급망 관리 범위로 ESG 평가항목이 확대된 점을 고려할 때 환경안전보건에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해당 항목에 대한 평가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의 ESG는 허상일 뿐이다.

박상희 켐토피아 대표 pkc@chemtop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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