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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1월 17일 과학기술처를 초도 순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73년 8월 17일. 정부는 이날 오전 중앙청 회의실에서 김종필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연구학원도시 건설추진위원회 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과학기술처는 위원회 규정 제안 이유로 “중화학공업 기술지원과 5대 전략산업 기술의 효율적 개발과 연구시설, 기술정보 교류, 기술인력 양성 등을 위해 과학기술처 장관 자문기구로 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추진위원회 구성은 박정희 대통령 지시 사항이었다. 박 대통령은 5월 18일 청와대 회의실에서 열린 연구학원도시 보고회에서 “관계기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계획을 수립하고, 업무가 끝나면 해산하라”고 지시했다. 국무회의는 이날 연구학원도시건설 추진위원회 규정(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정부는 9월 4일 대통령령 제6837호로 연구학원도시 건설추진위원회 규정을 제정, 공포했다. 추진위원회 업무는 연구학원도시 건설 기본계획과 입주기관 이전·신설계획, 각종 기관의 배치 계획, 공동 이용시설 설치와 운영계획, 기타 도시건설과 추진에 관한 주요 사항 심의 등이었다. 추진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2명을 포함해 모두 19명 이내로 구성했다. 위원장은 과학기술처 이창석 차관이 맡고 부위원장은 전상근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과 정재덕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이 맡았다.

처음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1명으로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이 맡는 것으로 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을 추가, 2명이 부위원장을 맡는 것으로 조정했다. 연구학원도시 건설인 만큼 건설부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추진위원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제2 행정조정관,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총무처 정부청사관리소장, 과학기술처 종합계획관, 내무부 지방국장, 문교부 교육시설국장, 건설부 주택도시국장, 공업진흥청 기획관리관, 충남 부지사, 한국과학기술연구소장이 추천하는 1명, 연구학원도시 건설에 관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가운데 과학기술처 장관이 추천하는 전문가 등으로 구성했다. 추진위원회는 기술적인 사항을 사전에 검토하기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한 기술분과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과학기술처는 박정희 대통령이 5월 28일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안)을 재가하면서 '도시건설 기본계획은 과학기술처 주관으로 내무부와 건설부 협조를 받아 수립하라'는 지시에 따라 6월부터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이 기본계획 수립 기한은 그해 12월까지였다.

과학기술처는 가장 먼저 현지 답사부터 시작했다. 현지에 나가 지형을 답사해야 탁상설계가 아닌 과학기술처가 원하는 자연 친화적인 두뇌과학도시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지 답사를 위해 6월 중순 전상근 종합기획실장과 백영학 진흥국장, 권원기 종합계획관, 박문녕 건설부 국토계획국장 등 관계자들이 자동차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충남 대덕으로 향했다. 일행은 충남도청에 들러 현지 상황 보고를 받은 후 담당 직원의 안내로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 예정지를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회고. “우리는 대덕 동쪽에 우뚝 솟은 매봉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저 멀리 대전시가 보였고,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마주치는 곳에 대덕연구학원도시가 들어설 넓은 들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 군데군데 야산과 농가가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였다. 나는 잠시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도취했다. 이 모든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초현대식 과학도시를 건설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대덕 현지를 돌아보고 돌아온 전상근 종합기획실장은 도시계획전문가로서 연구학원도시 기본구상 작업에 참여한 김형만 박사를 만났다. “김 박사, 연구학원도시의 구체적인 기본계획(안)을 수립해 주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외부에 일을 맡기려면 비용을 치러야 하는데 당시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 예산에는 그런 항목의 돈이 없었다. 방법이라면 다른 예산 항목에서 돈을 유용하는 일이었다. 항목 유용은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경제기획원 장관의 승인 사항이었다. 전상근 실장은 주무국장인 최동규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국장을 찾아갔다. 최 국장은 연구학원도시 건설에 다소 부정적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도시 건설 예산을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연구소만 자꾸 짓는다고 해서 반드시 과학기술 연구개발이 잘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일은 주무국장이 반대한다고 끝날 성격이 아니었다.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미 국가계획사업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과학기술처의 예산 유용을 승인했다.

전상근 실장은 새삼 박 대통령의 치밀한 업무 방식에 감탄했다. “만약 연구학원도시 건설 사업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가계획사업이 아닌 과학기술처 일반 사업으로 추진했다면 막대한 예산 학보와 부처 간 협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난관을 겪었을까'라고 생각하니 새삼 박 대통령의 조치가 감탄스러워졌다. 박 대통령의 그런 지시가 없었다면 도시건설 사업은 쉽게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처로부터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맡은 김형만 박사는 이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 일은 그동안 도시계획 용역과는 내용이 달랐다. 기존 용역은 이미 만든 도시에 관한 내용이었다. 과학기술처가 의뢰한 이번 용역은 건물이나 도로가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에 과학도시를 새로 건설하는 일이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새로운 유형의 도시건설 설계였다. 이를 잘 아는 김형만 박사는 과학자와 기술자, 교육자가 집단을 형성해서 협동 연구가 가능한 도시공간 설계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같은 해 10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1974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했다. 전 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김종필 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기술혁신과 국민생활 과학화를 위해 전자, 선박, 기계, 석유화학, 해양 등 5대 전략산업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충남 대덕에 700만평 규모의 연구학원도시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이후 대덕연구학원도시 사업은 더욱 속도를 냈다.

같은 해 10월 25일. 과학기술처가 제출한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안이 경제장관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전략산업으로 전자통신·선박·해양·종합기계·석유화학 등 5개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이들 특정 연구기관에 출연금을 지급하며, 토지와 시설 등에 국유재산을 무상 양여하거나 대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무회의는 11월 9일 오후 경제장관회의를 거친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을 의결했다.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증언.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의 특징은 설립하는 연구기관 형태를 재단법인으로 하고 재정 지원은 정부 출연금으로 하지만 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데 있다.”(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과학기술처는 이 법안을 같은 해 11월 21일 국회로 넘겼다. 해당 상임위원회인 경제과학위원회는 12월 7일 이 법안을 심의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위원회가 수정한 내용은 △정부가 출연금을 지급하거나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양여하거나 대여할 수 있는 대상 기관은 특정연구기관과 공동관리기구로 한다. △특정연구기관은 매년 사업계획서와 예산안을 주무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특정연구기관은 주무장관이 지정한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특정기관은 기밀 엄수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등이었다.


국회는 수정한 법안을 12월 18일 오전 10시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국회는 이 법을 12월 21일 정부로 보냈고, 정부는 12월 31일 법률 2671호로 공포했다. 법 제정으로 많은 전문연구기관이 등장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개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전문 10조로 된 이 법의 제정은 정부가 출연하는 연구기관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가 됐고,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가속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