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부린이, 몸테크, 줍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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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기자

30대인 기자 지인 중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부동산이다. 요즘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다. 그런데 지난해와 대화 주제가 확연히 달라졌다. 작년엔 집값 상승 얘기였다면 올해는 집값 하락 얘기뿐이다.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집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유주택자냐 무주택자냐에 따라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

유주택자는 지난 상승장의 추억에 빠져 있다. 최근 술자리에서 한 유주택 지인은 “집값이 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락은 일시적이고, 금리가 내려가면 언제든 다시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금리 하락과 경제 안정이 수요 회복을 불러올 것이라는 거다. 반대로 무주택 지인은 “앞으로 몇 억원은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오른 집값은 비정상적이어서 정상화돼야 한다는 논리다. 소위 '폭락론자'다. TV 토론 프로그램마냥 설전이 빚어졌다.

유주택자, 무주택자 사이에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한 사람)이 있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올 상반기 집을 산 지인은 “집값 절반 이상을 대출받아 샀는데 같은 단지에서 더 낮은 가격에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밤잠 설친다”고 했다. 다행히 지인은 고정금리 대출이어서 이자 급등의 칼날은 피했다.

2020년과 2021년은 부린이(부동산+어린이), 몸테크(실거주하며 오를 때까지 몸으로 버티기), 줍줍(미계약 또는 미분양된 무순위 분양권 계약) 등 신조어가 쏟아진 그야말로 부동산 광풍 시기였다. 모든 국민이 반(半)부동산 전문가가 될 지경이었다. 역세권, 학군, 직주근접 등을 따져 오를만한 지역에 투자해야 한다고 혈안이었다. 지금 집 사지 않으면 '벼락 거지'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1년도 안 돼 “작년에 집 안 산 사람이 승자”라는 얘기가 나온다. 유주택자와 무주택자를 가르는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져 30대 청년들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지난달 27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TV로 생중계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귀를 쫑긋하게 하는 발언을 했다. 서울, 경기도 등 규제지역 내에서 집값의 40%까지 가능한 담보인정비율(LTV)을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한해 50%로 완화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시세 15억원 초과 아파트에도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주택자, 무주택자, 영끌족 청년층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동산 하락기에, 끝모르고 치솟는 고금리 시대에 정부가 나서서 대출 더 받아 집을 사라니. 그것도 실수요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대출 규제를 풀어준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 시절 '빚 내서 집 사라'는 구호의 재현처럼 보인다.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건 우리 30대뿐일까.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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