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3분기 대만 TSMC에 처음으로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를 내줬다. 2030년 TSMC를 제치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도 세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비전을 밝혔지만,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삼성전자 올해 3분기 매출액은 23조원이다. 27조원 매출을 기록한 TSMC보다 4조원가량 적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5조1200억원으로 작년 대비 절반 줄었다. 반면에 TSMC 3분기 매출액, 영업이익은 각각 작년 보다 47.9%, 81.5% 급증했다. 고객사 5나노 첨단 반도체 주문 물량 증가에 4분기에도 실적 호조가 전망된다.
격차는 주력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로 나뉜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 2배를 웃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 규모는 3892억달러, 메모리는 1668억달러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점유율 세계 1위다. 전체 반도체 시장을 놓고 보면 메모리 시장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시장과 같은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성장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메모리는 시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천수답 시장' 구조다. 반면에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은 디지털 대전환에 맞춰 꾸준히 성장하는 '우상향 사업'이라는 점이 다르다. 고성능 컴퓨팅(HPC), 오토모티브, 인공지능(Al) 등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하며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반도체 시장 패권이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선언에서 2030년 131조원을 투자해 TSMC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지난해 매출은 25조원 수준으로 TSMC 연매출 68조원의 절반에 못 미친다. JP모건에 따르면 TSMC는 초대형 고객사인 애플 아이폰14 고급 모델, 일반 모델 모바일 AP 수주 물량을 모두 따냈다. TSMC는 애플뿐 아니라 AMD, 엔비디아, 소니 등 글로벌 하이테크 고객사의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이미지센서(ClS) 등 물량을 대거 확보해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
대형 고객사의 5나노 이하 선단 공정 경쟁에서 TSMC가 한발 앞서고 있다. TSMC 3분기 5·7나노 공정 매출은 전체 54% 수준이다. 특히 5나노가 7나노를 넘어선 건 처음으로 30%에 육박한다. 5나노 공정이 TSMC의 주력 공정으로 자리매김했고 5나노 이하 공정도 올해 하반기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TSMC는 삼성전자 반도체보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10년 앞서 있다”며 “5나노 공정을 안정화하고 애플AP 등 5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키우고 있어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데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가 TSMC를 추격하려면 결국 최선단 공정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최초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을 통해 3나노 최첨단 반도체를 상용화했다. 반면에 TSMC는 애초 지난달 생산하려던 3나노 모바일 AP 생산은 올해 하반기로 연기했다.
3나노 GAA 공정 고객사를 선점하는 게 마지막 승부수가 될 수 있다. 3나노 GAA 공정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안정화와 과감한 첨단 공정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모바일 외 신규 고객 확보는 GAA 출하 안정화와 GAA 차세대 공정 투자가 가를 것으로 보인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모바일 AP를 3나노 GAA로 안정적으로 생산하면서 애플 외 대형 테크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4년 GAA 2세대, 2025년 2나노, 2027년 1.4나노 첨단 반도체 공정 계획을 밝혔다. GAA 공정 적용 속도를 올려서 TSMC보다 앞서 2나노 이하 고객사를 확보하면 TSMC를 추월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국내외 팹리스와 협업도 관건이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은 “시스템 반도체는 결국 생태계 조성이 관건”이라며 “국내외 팹리스 업체와 반도체 설계자산 개발을 확대해야 파운드리 비즈니스 역량 강화도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