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혁신 플랫폼 향한 '원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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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 재판'이란 판사 역할을 해야 할 원님이 검사 역할까지 하는 재판을 의미한다. 행정권과 사법권이 지금과는 달리 명확히 분리돼 있지 않던 조선에서 절차나 원칙 없이 지방 수령이 제멋대로 판결을 내렸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9명의 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로톡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징계를 예견이라도 한 듯 로톡 무혐의 처분 후에도 “업계는 아직 로톡 이용에 조심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변협 리스크'를 피하자는 취지였다. 리스크는 법정단체가 징계권과 징계 근거를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동시에 가짐으로부터 비롯된다. 일각에서 '현대판 원님 재판'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이유다.

원님 재판에 처해질 또 다른 기업이 있다. 직방이다. 최근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화하며 공인중개사에 협회 가입을 의무화한다. 협회는 회원을 지도·관리할 수 있으며, 법을 위반한 회원에 대해 시·도지사 및 등록 관청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다. 김 의원은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은 우리나라 법정 단체에 있는 형식적인 법조문”이라면서 “국토교통부의 승인과 인가를 받아서 정관과 윤리 규정을 만들기 위한 근거법일 뿐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플랫폼 이용자와 종사자는 이미 법정단체와 플랫폼 갈등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떻게 흘러갔는지 경험해 왔다.

현대판 원님 재판 문제는 판결 여파가 당사자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혁신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 미래 창업자 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로톡의 인공지능(AI) 형량 예측 서비스는 형량 선고 추세나 형량별 분포 그래프 등을 바탕으로 법률 상담 또는 사건 전략을 세우는 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변협의 장벽에 가로막혀 폐쇄될 수밖에 없었다. 밤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1시, 공휴일이나 명절 등 약국이 운영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약 처방과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닥터나우는 대한약사회로부터 소송과 고발을 당했다. 서비스가 문을 닫게 된다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용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실제 조선시대 재판은 흔히 알려진 원님 재판이 아니었다는 고증이 있다. 조선시대 민사 판결문을 보면 소송의 내용, 원고와 피고의 진술, 제출된 증거 문서와 최종 판결 등 소송의 진행 상황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럼에도 원님 재판이 불공정한 재판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원님이 행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가진 초월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초월적 권한을 거머쥔 사람이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특히 이권이 걸린 당사자가 원님이 된다면 권력 집중과 남용은 방지하기 어렵다. 권력 작용을 삼권분립으로 나눈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손지혜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