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 산업이다. 국내 콘텐츠 수출액에서 70%에 육박하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K-게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하는 해외 게이머도 적지 않다. 올해 열린 유럽 최대 게임쇼 게임스컴에서는 모바일뿐만 아니라 PC와 콘솔 시장에서도 K-게임의 높은 잠재력이 확인됐다.
K-게임 성장의 뒤편에는 오랜 기간 지지와 사랑을 보낸 이용자들이 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게임사가 유니콘이 되고 글로벌 기업으로 커갈 수 있게 된 가장 든든한 뒷배가 바로 이용자들이다. 게임을 즐기며 학창 시절을 보낸 이용자들은 어느덧 학부모가 됐고, 게임은 가장 보편적 국민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최근 K-게임을 대하는 국내 이용자의 민심은 애증을 넘어 싸늘한 수준에 이르렀다.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기업의 외형과 시장 규모는 글로벌 수준으로 커진 반면 이용자가 받는 대우는 점점 더 소홀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주요 게임사가 밀집한 판교를 뒤흔든 '마차 시위'는 그동안 게임 업계 전반에 걸쳐 누적된 불만과 불신의 단편이 일부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 사후약방문격으로 전면적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제시했지만 한 번 잃은 신뢰는 회복이 어렵다. 일부 이용자가 승소 가능성을 떠나 '환불 소송'이라는 극단적 대처도 거듭된 실망 속에서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게임업계는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이용자를 '매출'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함께 양질의 게임과 문화, 생태계를 마련해 가는 동반자로 대우하지 않으면 산업 발전의 가장 큰 우군조차 결국 등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용자 권리 보호와 소통은 단순히 법으로 강제하기 어렵다. 게임업계의 자율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내 게임 이용자가 관련 법의 개정 추진 움직임에 어느 손을 들어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국내 게임사 역시 지난해 트럭 시위 이후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수익성이 좋은 모바일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성이 높은 콘솔 게임 분야로 진출하고, 과금 모델 개선과 소통 강화에도 힘썼다. 내부 조직 구조를 개편하고, 게임업계 종사자의 소명감과 체질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세계 시장에서 K-게임이 우뚝 서기 위해 진흥 정책을 더 펼쳐도 모자란 때다. 게임 업계가 스스로 이용자와 척을 지며 새로운 규제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 이용자가 진솔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면 더 많은 실천과 과감한 시도를 이어 나가야 한다. 지금 겪는 진통이 K-게임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