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공룡은 쿠팡, 옥션, G마켓 등 온라인 쇼핑 앞에 시장지배력을 급격히 잃어 가고 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금융, 교육, 의료, 부동산 등 기존 오프라인 서비스도 온라인 서비스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산업 측면에서도 제조업·건설업·자동차, 심지어 농업에 이르기까지 각 산업에 속한 기업은 생존에 사활을 걸고 스마트팩토리·스마트건설·스마트카·스마트팜 등 소프트웨어 중심 디지털 체계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로 현대자동차는 지난 2020년 '2025 전략'을 통해 전통적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1세기에 차만 만들어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근본적 혁신을 끌어내기 위한 과정에서 찾은 해답이다.
디지털 중심 산업구조 재편에 따라 직무 변화 또한 가속되고 있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디지털화를 추구하면서 필수적으로 기존 직무는 감소하고 혁신적인 전략을 수행할 디지털 조직과 그에 속한 새로운 직무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경험해 온 직무 변화의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지털 기반 제품과 서비스는 기획부터 개발, 지원에 이르기까지 각 요소를 담당하는 직무 담당자에게 디지털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이른바 '소프트웨어 싱킹(Thinking)'이 중요한 역량의 하나로 다가온 것이다.
세계적 디지털전환 흐름에 우리나라의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비교적 최근 발생한 사회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1년 초 넥슨의 새로운 연봉 정책을 신호탄으로 해서 게임업계 전반적으로 정보기술(IT) 인력에 대한 파격적 연봉 인상이 확산됐다. 그동안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로 불리며 고연봉을 제시하며 능력있는 IT 인력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던 대표적인 IT기업에 이어 게임업계가 IT 인력 확보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그 외 디지털전환에 한창인 여러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도 참전하며 IT 인력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해당 인력에 대한 공급이 현재의 수요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예견하고 정부에 IT 인력, 나아가 디지털 인재 양성을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다. 디지털 인재의 양적·질적 미스매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었으며, 업계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계속해서 고민해 왔다.
다행히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이하 종합방안)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100만명의 디지털 인재 양성, 전 국민의 디지털 교육 기회 확대와 역량 강화 지원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급변하는 미래사회의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디지털경제 패권국가 실현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종합방안을 살펴보면 몇 가지 해석이 필요한 사항이 눈에 띈다.
첫째 100만 인재 양성에 대한 절대적인 수치다. 일각에서는 저급 인력 양성과 과도한 인재 양성 등 질적·양적 미스매치를 언급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한정된 시각에서 비롯된 오해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현대자동차 이외에도 전 산업에 걸쳐 디지털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화장품 회사 로레알이나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 등에서는 이미 데이터 관리 리더인 CDO(Chief Data Officer) 직책을 두고 대규모 디지털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도 건축물 시공에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설계 및 모델링, 시뮬레이션까지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유한 인력이 관여하고 있다. 머지않아 단순·반복적 업무는 자동화되거나 인력이 아닌 다른 형태로 대체될 것이다. 전통적 산업조차 기존 직무에 알고리즘 구현, 데이터 분석, 콘텐츠 개발 등의 역량을 요구하는 수요가 현재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기조에서 해외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인재를 미래의 핵심동력으로 인식하고 이미 오래 전부터 대규모 디지털 인재 양성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방안은 우리나라 모든 산업에서의 디지털전환 수요를 모두 포괄해서 양성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시도이며,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대부분의 실행 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 반도체 인재양성 계획에서 제기된 지방대 홀대 우려를 하고 있으나 산업계에서는 지방대 공급 인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살펴보고 있다. 지역 기업과의 협업 등을 통해 지역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지방대는 인구 구조 변화와 경기 하강에 기인해서 존재 가치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지역 발전방안과 연계해 디지털 인재 양성 거점으로 활용된다면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지역 발전을 이끌 혁신 인재 양성이라는 당위성은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패권국가의 기반이 되는 디지털 인재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국어, 영어, 수학 등 필수 과목처럼 디지털 교육은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과목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체계적인 공교육 체계를 정립하고 산·학·연 협업 체제를 적극적으로 만든다면 현재 발표된 종합방안에 대해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사교육 문제와 관련한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내실화 추진, 경쟁력 있는 공교육 기반 조성과 학생 지원을 위한 체계적 체제 마련, 지나친 성적 위주 선발의 입시 정책 개선 등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디지털 패권국가 실현을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종합방안은 우리 산업계에 큰 의의가 있다. 여러 우려에도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종합 대책이라는 측면에서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종합방안이 실효성 있고 원활하게 시행된다면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살아갈 모든 국민을 비롯해 산업계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업계에서는 정부 및 교육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경제로 전쟁하는 시대이며, 이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산업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산업 혁신은 사회 구성 원리, 제도·정책, 국민 의식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국가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율곡 이이(李珥)가 주장한 10만 양병설이 무산된 후 임진왜란으로 큰 화를 입은 과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정부의 종합방안이 우리나라가 경제전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jhjoh@sw.or.kr
〈필자〉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서 21년 동안 대표이사로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이다. 지난해 2월부터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18대 회장직을 맡으면서 소프트웨어(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컴투스홀딩스 사외이사,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이사, 대통령직속 한국판뉴딜국정자문단 부단장으로 있다. 특히 올 9월부터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으며 SW와 ICT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