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미래차 혁신은 SW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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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장

“자동차는 이제 기름이 아닌 소프트웨어(SW)로 달린다.” 벤츠 전성기를 이끌던 디터 체체 전 다임러그룹 회장이 지난 2012년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의 기조연설에서 던진 화두다. 전통 산업인 자동차에 반도체를 탑재하면서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갖추게 됐고, 나아가 차량을 제어하는 핵심 영역까지 전자기술을 요구하며 SW의 중요성이 커진 것을 강조한 말이다. 10년 후 이 말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에 따르면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에 포함된 코드 수는 약 1억 라인이다.

1968년 폭스바겐이 타입3(type3)에 전자제어장치(ECU)를 처음 적용하면서 5만 라인의 코드가 포함된 후 2000배가 늘어난 것이다.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필요 코드 수는 3억 라인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숙련된 SW 엔지니어 1명이 하루에 100라인을 코딩한다고 했을 때 1000명이 약 10년을 꼬박 코딩해야 처리할 수 있는 수치다.

코드 수 증가는 자동차 SW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앞으로 자동차는 SW가 차량의 제어·기능 등을 결정하는 이른바 '소프트웨어정의차'(SDV)로의 전환이 가속될 것으로 분석된다. 전동화·자율주행 등 미래차 산업경쟁력을 SW가 결정하는 것이다. 실제 자동차에서 SW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2020년 30%에서 2030년에는 스마트폰과 비슷한 수준인 5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매킨지에 따르면 차량용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2030년 500억달러(약 67조4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드웨어(HW) 대표 제품으로 인식되던 자동차는 이처럼 '바퀴 달린 정보통신 기기'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처럼 미래차는 자율주행, 커넥티드 서비스, 인포테인먼트, 안전, 보안을 핵심 사용자 콘텐츠로 가져온다. 전자기기가 자동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기반의 내장형 시스템은 필수다. 실제 차량 내 전장제품 사용이 늘면서 다수의 부품공급자가 제공하는 ECU에 의한 SW가 다양화되고, SW 재사용·안정성을 위해 자동차 전장용 임베디드 SW 개발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개방형 표준 SW 구조 AUTOSAR(Automotive Open System Architecture)·GENIVI(Geneva In Vehicle Information) 등 표준 플랫폼을 제정하고 확산하고 있다.

완성차 기업, 부품기업은 이 흐름에 대응해 차량용 SW 개발과 설계 및 기획을 할 수 있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SW 개발 인재 확보와 융합 생태계 조성이 미래차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인 이유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됐을까. 한국자동차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차량용 SW 인력은 1000명 미만으로 추정된다. 미국 차량용 SW 인력은 현재 3만명 이상으로 조사된다. 국내 자동차 산업 규모를 고려할 때 최소 1만명 이상의 차량용 SW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차량용 SW 인력양성을 위한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지만 실질적 인력양성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자동차 업계의 SW 인력 가뭄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미래차 SW 인력 선점을 위해 선제 투자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테슬라가 각각 5000명 넘는 차량용 SW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구글·아마존·애플 등 미래차 산업 진입을 추진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도 차량용 SW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토요타는 올해부터 신규 채용 인력의 40%를 SW 인력으로 채용, 1만8000명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SW 전문가 수당제도를 도입하는 등 인력 확보에 노력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운용체계(OS)·인공지능·보안·업데이트(OTA) 등 차량용 SW 플랫폼 주요 분야 기술 개발에 미국·중국·인도 등 해외 전문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한다면 차량용 SW 생태계 자체가 경쟁국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 국산화율이 99%에 이르는 내연기관 부품산업과 달리 미래차 분야 국산화율은 선도국 대비 약 70% 수준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SW 분야 경쟁력은 약 40%에 미치지 못해 HW와 비교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 분야 혁신이 대부분 전장 분야에서 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기업이 SW 기술력을 내재화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서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12조원을 투자해 커넥티비티·자율주행 등 전사적인 SW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도 미래차 산업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국형 SDV 플랫폼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나설 계획이다. 나아가 미래차 산업생태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중·장기적 관점에서 관련 SW 생태계 구축 전략이 필요하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 기존 차량용 개발인력을 SW 플랫폼 인력으로 전환·활용할 수도 있다.

세계 시장에서 중요도가 높아지는 국제 표준 SW 플랫폼인 AUTOSAR 활용 인력을 공격적으로 양성, 중소 부품사의 글로벌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는 정책적 지원도 시급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중점 교육센터와 광역거점 대학을 연계한 종합적인 인력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자동차 업계도 완성차 기업 중심으로 SW를 개방하고, 부품사 전반을 아우르는 개발·협력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

당긴 화살을 놓을 수는 없다.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 글로벌 미래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경쟁 속에서 세계 3위권의 판매량, 세계 5위권의 생산량 저력을 기반으로 활시위를 더 팽팽하게 당겨야 할 때다.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장 ssna@katech.re.kr

○나승식 원장은= 서울 고려고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정보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36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정보통신부 IT중소벤처팀장·지식정보산업과장,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정책과장·기계항공시스템과장·정보통신정책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정책단장을 거쳐 국무조정실 산업과학중기정책관, 산업부 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 무역투자실장, 통상차관보,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지난 2월 제12대 한국자동차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자동차 E/E 아키텍처의 변화

자동차 SW 원가 비중 전망(출처: 딜로이트)

※ SW 범위 : 애플리케이션 SW, AI 알고리즘, 운영체제(OS) 및 SW가 통합된 제어기·칩·전자HW 등을 포함

국내외 자동차용 SW 시장 규모 및 전망(출처: 마켓샌드마켓츠)



국내외 SW 인력 확보 현황(출처:언론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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