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인프라 세계 1위국을 꼽으라면 한국이다. 해외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로 카드시스템, 금융거래망, 간편결제 네트워크가 잘돼 있는 나라다.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치르면서 비대면 거래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은 개탄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럽다. 비실명 송금을 원천 차단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 규제를 걷어내겠다는 새 정부의 기조와도 반대다. 간편 송금을 계좌 기반으로만 거래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는 게 핵심이다. 명분은 있다. 마약이나 성매매 등 불법 거래 등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MZ세대부터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까지 대부분 간편송금을 이용한다. 또 계좌가 없는 외국인도 간편송금에 익숙해 있다. 이 때문에 간편송금은 디지털금융의 새로운 플랫폼, 포용금융을 실현하는 공익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영향력을 무시하고 은행 계좌 기반으로 송금 체계를 되돌리겠다는 발상은 시대를 역행하는 졸속 행정이라 할 수 있다.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산업 생태계를 외면한 정책은 '구태'가 된다.
불과 몇 년 전 금융당국은 혁신금융의 기치를 내걸고 간편결제와 핀테크 산업 진흥을 주창했다. 오픈뱅킹이 도입되고, 마이데이터가 실현되고, 다양한 간편결제 사업자가 등장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디지털금융 확장도 추진했다. 그런데 최근 금융위의 행보는 과거 정책과 단절하고 업계와는 소통도 전혀 되지 않는 '불통 기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핀테크 기업이 디지털금융 관련 금융위 주무부처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강압적이고 전문성 없는, 오락가락하는 정책만을 고수한다고 꼬집는다.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은 전금법 개정안 방향성에 대해 다시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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