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정부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Big Data)·블록체인(Block Chain), 즉 ABB로 뜨겁다. 광주는 AI 집적단지, 부산은 블록체인 특구와 거래소, 대구는 한발 더 나아가 ABB 자체를 민선 8기 지방정부의 핵심 산업으로 지정하고 행정조직까지 개편했다. 하지만 ABB가 행정과 산업을 혁신하고 힘 있는 지역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ABB의 현실적 특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실행전략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ABB는 개별 요소들이 상호 되먹임(feedback)하는 특성이 있다. 이는 소재·부품·모듈·시스템·완제품·서비스로 연결되는 기존 가치사슬 망과 달리 ABB 산업은 내부 요소들 상호 간에 되먹임하면서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따라서 ABB 개별요소별 육성 전략보다 요소 간 묶음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ABB는 발전할수록 경제 일자리가 줄어드는 딜레마가 있다. 이미 디지털화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전통 산업 또는 단순 서비스산업 경제활동인구가 ABB 기술로 빠르게 대체된다는 보고가 있다. 새로운 기술이 만드는 일자리 수보다 대체되는 일자리 수가 많고, 그 격차도 기술 발전 속도에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또 ABB 관련 전문인력의 손쉬운 이동성도 중요한 특징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첨단산업 인력 공급의 악순환은 심화한다. 지방 기업은 새로운 세대가 요구하는 처우와 임금 같은 요인 외에 문화 접근성, 직업의 횡적 이동 가능성 등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인력 수급에 어려워 한다.
마지막으로 승자독식 구조(winner takes all)라는 ABB의 플랫폼 특성으로 말미암아 지역 산업생태계에서 공급기업 개체 수를 단기간에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지역에서 ABB를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의지와 달리 핵심 공급기업은 수도권에 존재하고 지역은 파일럿 시장으로 전락할 공산이 높다.
이상과 같은 특성은 ABB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지역에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긴다. 자칫 산업 육성에 대한 노력이 지역에는 작업자 없는 공장과 역외에 있는 플랫폼 사업자에 종속된 기그(Gig) 노동자만 남는 극단의 상황으로 몰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의 ABB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중한 전략과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첫째 지역 ABB의 새로운 시장 창출과 함께 ABB 산업구조의 질적 개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역외 ABB 연구소 기업을 지역에 적극 유치해야 한다. 또 스마트시티, 메타버스, 디지털트윈 같은 시장 창출형 사업을 통해 지역 ABB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지원해야 한다. 전통 산업에 대해서도 데이터 축적 체계를 지원, 디지털화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미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기업에는 데이터 비즈니스로 끌어내는 신뢰 기반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화로 이동하는 인력의 전환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ICT 산업 자체 육성과 함께 잉여 노동력을 흡수하는 선도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력 양성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대학뿐만 아니라 지원기관과 민간기업이 인력 공급에 공동 책임을 지고 프로젝트형 전문인력 양성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또 디지털화에 따라 밀려나는 중간계층 인력에 대한 쿠션 정책이 필요하다. 전환 교육, 전문기술 리터러시 역량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지역에 특화된 ABB 산업 정책 발굴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확장성과 이식성이 높은 ABB 기술 특성 때문에 지역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도시는 공간만 제공할 공산이 높다. AI 기반 도시 비서 개발, 실시간 지역 데이터를 제공하는 다양한 데이터 채널 확보, 지역 예술작품이나 대구시민과 함께 공유하는 대체불가토큰(NFT)형 개발 등 다양한 참여형 서비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에 ABB가 뿌리내리는 형태의 사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ABB 산업생태계를 위한 적절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구는 이미 '제2 판교'라 불리는 SW 융합산업생태계를 수성알파시티에 성공적으로 구축한 경험이 있어 ABB로 지역 산업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할 좋은 기회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진흥기관과 자원 배분에 맞는 기관 간 사업성 및 책임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한다. 지원기관도 행정 처리 전문 기능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ABB 요소별 전문성을 확보하고, 시장 창출형 전문 기획 역량을 갖춘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주춧돌(코너스톤)은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기둥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ABB가 산업과 행정 혁신을 통해 지역 경제를 받쳐 주는 주춧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디지털융합센터장 kimheedae@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