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카프는 '기술철학개요'에서 도구, 기계 등 기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삶을 탐구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더 나은 도구를 발명하는 과정이다. 원숭이는 돌을 던져서 먹이를 잡지만 그 돌을 다시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원시 인간은 던진 돌을 다시 가져와서 다음 사냥에 썼다.
우리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신체기관을 복제하는 방향으로 도구, 기계를 만들어서 이용했다. 이를 '기관 투사'라 한다. 손톱과 이빨을 본떠 돌끌·돌칼을 만들고, 팔과 주먹을 본떠 돌도끼·돌망치를 만들었다. 렌즈, 돋보기는 시각기관인 눈의 수정체를 복제한 것이다. 다리를 건설하면서 교각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은 우리 몸의 골격을 모사한 덕분이다.
증기기관은 석탄 등 공급받은 연료의 산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어 운동하고, 연료 공급이 끊기면 멈춘다. 그 수축·팽창 활동은 사람의 관절 활동을 투사한 것이고, 음식을 먹고 움직이고 영양 공급이 중단되면 활력을 잃는 것과 같다. 교통망은 우리 몸 속 혈관망의 복제다. 수많은 교통수단과 교통신호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차하고 얽혀서 교통망을 만든다. 인체의 혈액순환을 닮았다. 통신망은 우리 몸의 뇌·척수와 근육 사이를 오가는 신경망을 본떠 만든 구조로, 정보 전달에 봉사한다. 인간 신체의 내외부 기관에서 보이는 형상의 비례(황금비율)는 인간이 외부에 만든 도구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음악, 시, 소설, 조각, 그림, 건축, 종교 등도 그 비례를 충족할 때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도구가 쓸모를 넘어 아름다움을 띨 때 문화예술 영역으로 넘어간다. 바이올린을 보라. 내부는 청각기관을 닮았고 외부는 인간의 아름다운 몸을 닮았다. 비례관계가 클수록 아름답다.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바이러스나 벌레도 그렇게 느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신체기관의 외부 투사에도 남는 허무와 불안은 정신을 투사해서 신과 신앙을 만든다. 신이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든 것인지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한 신과 신앙을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인간이 만든 도구는 결핍이나 결여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자신을 외부세계로 연장해서 무한정 자유를 확장한다. 급기야 도구 자체에 혼을 불어넣어 외부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고, 자아 인식과 더불어 동물과 구별되는 다른 차원의 문화예술을 꽃피운다.
도구의 거듭된 발전은 그 동력원으로 인간의 근육(힘)을 줄이고, 동물·물·바람 등의 자연력 이용을 높인다. 석유, 전기 등 연료와 기술 발전은 더 나은 도구인 기계를 만들어서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길렀다. 그 과정은 기술에 의한 노동 대체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할은 기계의 전원을 켜고 끄는 것에 그치고 나머지 기능을 기계가 전담하는 시대가 된다.
인공지능은 무엇인가. 인간의 복잡한 뇌를 외부세계에 투사, 복제한다. 기계는 아무리 완성되어도 인간의 손에 매달리게 되고, 거기서 벗어나면 기계이기를 멈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인공지능의 작동이나 그 중단에 인간의 역할이 거의 없게 되는 순간 인공지능은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된다. 인간의 도구 욕구는 자기 자신의 내부보다 외부에서 가치를 찾는다. 결핍이 보충되지 않거나 만족을 얻지 못하면 허무·불안·공포를 느낀다. 자유의 무한 확장은 외부세계를 동료가 아닌 이용 수단으로 만들고, 공존을 도외시해서 생태계와 공동체를 파괴한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은 우리 조상이 돌칼을 사용하다가 실수해서 자신의 손을 베인 것에 비교할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엔 개별 인간 개체만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개체, 자연 생태계와의 공존만이 살길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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