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세 살 개인정보 보호, 여든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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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기억을 돌이켜보면 장래희망으로 과학자를 말하는 친구가 많았다. 유년기 시절을 보낸 1970년대 초반에는 경제발전이 국가의 최우선 목표였으며, 이를 위한 '과학보국'(科學報國)은 시대적 과제였다.

흑백TV를 통해 방영된 어린이용 프로그램도 로봇이 등장하는 내용이 많았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아이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과학자라는 꿈을 품게 된 것이리라.

요즘은 어떤가. 매년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희망직업 조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선호하는 상위 20개 직업 안에 크리에이터, 웹툰 작가 등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명칭조차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직업이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들어보면 시대 흐름이 보인다고 한다. 최근의 희망직업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단순히 여가를 위한 공간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한편 미래를 꿈꾸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의 일상화'는 코로나19 이후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수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만나 함께 논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생성하고 제공한 정보도 쌓여 간다. 무제한의 온라인 세상에서 대규모로 축적되는 우리 아이들의 정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생각지 못한 피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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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7월 1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주인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취지다.

기본계획 발표 이후 적지 않은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특히 보호자가 인터넷에 올린 자녀의 사진·영상 등에 대해 아동·청소년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에 관심이 높았다. 부모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에도 보호자가 자녀의 의사를 묻지 않고 자녀 정보를 SNS 등에 공유하는 이른바 '셰어런팅'(Share+Parenting)이 자녀의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나아가 과도한 개인정보 노출로 자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자녀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기본계획 발표를 계기로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보호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실시한 개인정보 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정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청소년 비율은 전체의 36%에 그친다. 이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교육부와 함께 아동·청소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개인정보 교육을 내실화하려고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초등학교 실과, 중·고교 정보과목 등 관련 과목에 연령대별 특성에 맞는 개인정보 보호 교육내용을 반영하고, 어린 시절부터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량을 길러 나가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이 온라인 서비스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한다. 기본계획 발표 이후 개인정보위는 온라인 사업자들이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처리 단계별로 참고할 수 있는 사례와 해외 동향을 담은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특히 아동·청소년이 SNS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릴 때 '전체공개'를 기본값으로 설정하지 않는 등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개인정보 보호 중심 설계'(PbD; Privacy by Design) 원칙을 적용, 아동·청소년이 자연스럽게 본인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도록 했다. 또 지난해 실태조사 결과 아동·청소년이 개인정보를 제공한 경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게임, SNS, 교육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자율적인 보호 조치를 해 나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가칭)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법' 제정을 추진한다. 유엔은 지난해 3월 '디지털 환경에서 보장되어야 할 아동 권리'를 발표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 '프라이버시권'을 꼽고 이를 위해 국가가 법률적·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영국은 수 년 전부터 18세 미만 아동의 연령을 5개 단계로 나누어 연령별 보호 조치를 규정한 '연령적합설계규약'(AADC; Age Appropriate Design Code)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연방 차원의 일반법이 부재한 미국에서도 아동에 대해서는 '아동 온라인 개인정보 보호법'(COPPA; Children's Online Privacy Protection Act)을 제정·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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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에 특화된 개인정보 보호 체계 마련은 국제적 추세이자 시대적 사명이다. 사실상 개인정보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 14세 이상 청소년까지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잊힐 권리' 도입, '법정대리인 동의제도' 개선 등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아동·청소년의 특성을 반영한 원칙과 권리 등을 설계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잊힐 권리'의 경우 법제화에 앞서 본인 게시물 삭제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는 지자체 및 민간 디지털 장의사 업계 등과 소통하고,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 등 타 법익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함께 면밀히 살펴 접점을 찾아 나갈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손도 많이 간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아이들의 디지털 인격권인 개인정보는 정부·기업·보호자 모두가 참여해서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이러한 경험이 밑거름으로 작용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밝히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체계 마련을 위한 이번 계획이 미래 디지털 사회의 탄탄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영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choileo@korea.kr

◇최영진 부위원장은...

최 부위원장은 부산진고, 서울대 지리학과 학사, 행정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 행정학 석사를 거쳤다.

행정고시 36회 출신으로서 정보통신부를 시작으로 옛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를 거친 정통 관료다. 국립전파연구원 원장과 전남지방우정청 청장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 선임행정관,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원단장으로 재임하고 2020년 8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표〉잊힐 권리 지원 대상 게시물 유형(안)

: 시범사업 대상

※ 신청인의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과 제3자의 법익(표현의 자유, 알 권리) 등을 고려하여 권리 행사 요건 및 제한 사유(범죄수사, 법원 재판 진행, 법적 의무 준수) 등을 규정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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