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27)이탁오 사상과 디지털시대의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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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자를 존경하면서도 왜 존경하는지 몰랐다. 앞사람이 좋다고 하니 나도 맞장구쳤다. 50세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짖으니 나도 따라 짖을 뿐이었다.”

중국 명나라 유학자 이탁오의 말이다. 혹세무민을 이유로 감옥에 갇힌 그는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 분서(焚書·당장 불태워야 할 책)와 장서(藏書·숨겨 두어야 할 책) 등 그의 불온한 글은 그 이름에도 세상에 드러나 후세에 전해졌다. 부당하게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린 권세가들과 그들이 악용한 유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동심론(童心論)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려면 때 묻지 않은 소년의 마음처럼 진실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공자의 사상은 남을 아끼는 마음이 본질이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부국강병을 통해 천하를 통일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로 창업한 국가를 질서로 안정시키려는 위정자와 사상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모범이 되며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따른다. 공정하고 의로운 자가 신뢰를 얻어 높은 자리에 있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했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예의를 지키고 상하관계로 순서를 정했다. 어진(仁) 사람은 높은 자리로 나아가 의로움(義)을 펼치고, 인(仁)과 의(義)의 순서를 예(禮)로 잡았다. 충효의 윤리관, 덕치(德治)의 정치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봉건질서를 중시하고 친족에서 외연을 넓혀 나가는 것이기에 혈연·지연·학연 중심 사회를 구성하고, 그 부패를 막지 못했다. 공자의 경(敬)사상은 상하관계의 낡은 신분질서를 강화하고 일제강점기와 군사정부에까지 이어졌다. 상명하복의 예절로 변질돼 새로운 사상과 아이디어의 등장을 막았다.

디지털 문명은 칼·망치·농기구 등 도구를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컴퓨터, 스마트폰, 인공 신체와 장기, 인공지능까지 만들어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동식물 등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 온난화, 환경오염 등을 불러왔다. 디지털 문명이 자본집약적이기에 문명의 이기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소득 격차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불평등을 높이는 원인도 제공했다. 디지털전환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자유를 넓힌다는 관점에서 제조업, 유통업 등 다른 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메타버스의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발전이 인간 사이의 평등·안전을 저해하거나 석탄 등 화석에너지 사용, 난개발, 산업폐기물로 자연 생태계를 교란해선 안 된다. 인간의 자유 확장도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인류문화 발전에 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인공지능, 자연 등과 공존할 수 있는 개체 초월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수 가치를 중시하는 정권에서는 산업과 시장을 지원해 인간의 자유를 존중·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 가치를 중시하는 정권에서는 산업과 시장에 대한 견제를 통해 인간의 자유 확장이 가져오는 불평등, 안전사고, 기후 온난화 등 생태계 파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권을 잡는데 필요한 투표 수로 직결되거나 진영 논리에 휩쓸린다면 디지털전환의 장단점에 대한 검토와 대안 마련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선택 및 폐기의 갈림길에 선다. 원자력 발전을 계속할지 중단할지에 관한 논의도 같은 문제였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진실함은 무엇일까. 이탁오가 21세기에 다시 살아난다면 뭐라고 할까. 디지털전환을 뒤덮은 국가·사회적 편견과 정치적 껍데기를 걷어내야 한다. 디지털전환의 이익과 불이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함께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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