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BA.5에 취약한 '대통령 집무실'

Photo Image

지난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 양당 후보를 따라다닐 때의 일이다. 유세차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두 후보는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를 벗고 했다. 당시 시민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를 다닐 때였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양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은 유독 '과학 방역'을 외쳤다. 그러면서 당시 시행하던 거리두기를 포함한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정치 방역'으로 규정했다. 그가 제시한 과학 방역 기반은 '데이터'였다.

대선 직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과학 방역은 큰 화두였다. 빅데이터 활용, 항체 양성률 정기 조사 등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꼽혔다. 당시 인수위 측은 문재인 정부의 방역 정책은 여론에 휩쓸려서 결정됐다고 비판하며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벌써 2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잠잠해지던 코로나19도 BA.5라는 오미크론 변이로 말미암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12일 0시 기준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3만7000명을 넘었다. 전날보다 약 2만5000명 증가한 수치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목이 터져라 외쳐 온 '과학 방역'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과학 방역은 여전히 물음표다. 과학 방역의 필수 전제 조건인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움직임을 이제야 막 시작한 탓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추진하겠다고 한 '항체양성률 조사'는 올 7월 들어서야 시작했다.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라 부랴부랴 나섰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정책은 선제적인 조치가 매우 중요하다. 방역 정책이 대표적이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감염병 확산을 우선적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서 대비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반면에 윤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추진한 정책도 있다. '대통령실 소통 차단'이다. 대통령실은 11일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국민소통관 기자실 운영 방안을 공개했다. 논란이 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을 비롯해 대통령 공개 행사 풀취재 최소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대변인의 브리핑을 가능한 한 서면 중심으로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실은 해당 정책 결정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았다.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사무공간 밀집, 집무실과 기자실이 분리돼 있지 않아 감염병 확산에 취약하다는 이유만 내세웠을 뿐이다.

대통령실 설명대로 집무실이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구조라면 사실 더 큰 문제다. 집무실 자체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대통령의 안위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돌고 돌아 무리하게 집무실을 이전한 대가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윤 대통령은 12일 다시 도어스테핑을 재개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대변인실의 엇박자는 '과학 방역'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정치 영역'이었을까.


최기창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