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디지털 헬스케어, 또 규제와 떼법에 막히나

서울시의사회, 닥터나우 고발
의협 "비대면 진료 원점 재검토"
약사회, 화상투약기 설치 반대
이해단체에 디지털 신기술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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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와 원격화상투약기 등 새로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이 또다시 개화하기 전에 시들 위기를 맞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은 윤석열 정부가 내건 보건 분야 주요 공약이었지만 의료계와 약계 등 이해단체들이 반대에 나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장관 부재에, 꼬인 실타래를 푸는 데 적극적이지 않아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퇴보할지 우려된다.

◇의사단체 “비대면 진료 중지 먼저”…꼬일 대로 꼬인 협의

비대면 진료를 위한 정부와 관련 단체 논의는 지지부진을 넘어 최악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이달 중순 비대면 진료 업체 닥터나우를 강남경찰서에 고발했다. 이 회사 '원하는 약 처방 받기' 서비스가 의료법과 약사법을 모두 위반했다는 것이다.

업계는 서울시의사회가 법 위반을 명분으로 고발했지만 실제로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플랫폼 관계자는 “법 해석 여지가 있는 서비스에 대해 일단 고발부터 한 것”이라면서 “플랫폼 입장에서는 개별 기획마다 딴지가 걸리면 자체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한발 더 나아가 최근 비대면 진료에 대해 '원점 재검토'로 입장을 정리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 필요성에 공감대가 확대됐지만 한시적 허용 상태인 비대면 진료를 종료하고 백지상태에서 다시 판을 짜자는 것이다.

의협은 보건복지부와 2020년 맺은 '9·4 의정합의'를 근거로 들고 있다. 양측은 당시 비대면 진료를 비롯한 4대 정책(의대 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발전적 방안에 대해 별도 의정 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의협은 이 의정 협의체 논의가 먼저라는 이유로 최근 보건복지부가 구성을 추진한 비대면 진료 협의체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의협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의정 협의체를 먼저 구성할 방침이다. 하지만 의정협의체는 비대면 진료 주요 구성원인 약사단체와 플랫폼 업체들이 배제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의협과 별도조직인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 의정협의체 구성 자체에 반대하고 있어 사안이 복잡하다.

전의총은 이달 중순 “코로나19가 안정화됐다면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은 격리환자에 대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의 전면 중단”이라면서 “오히려 의협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해 논의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입장을 밝히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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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닥터 사진=라인헬스케어

◇약사회, 화상투약기도 거부

이달 20일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과제로 승인 받으면서 10년 만에 시범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 화상투약기도 약사단체들 반발에 직면했다. 화상투약기는 약국이 문을 닫은 심야 시간이나 휴일에도 약국 앞에 설치된 기기를 통해 약사와 영상 상담을 하고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어렵게 시범 운영 기회를 얻고 설치 의사를 밝힌 약국도 50곳에 달했지만 약사단체는 전면전을 선포했다. 약사회는 실증 특례 승인 직후 성명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위한 정부와의 협의를 중단하고 약사회를 중심으로 전국 16개 시도지부가 단결해 단 하나의 약국에도 약 자판기가 시범 설치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증 기간인 4년 동안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화상투약기 약국 설치를 막고 실증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다.

실제 화상투약기 시범 운영 시도는 번번이 약사회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혀 실패로 끝났다. 2013년 부평 한 약국에 시제품을 설치하고 시범 운영을 시작했지만 약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3개월여 만에 철수했다. 지난해 용인시 한 약국이 독자 운영을 시작했지만 약사회 논란이 확대되자 나흘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화상투약기 설치 약국과 비대면 약 조제 배송 참여 약국에 대해 약사회가 각 시도지부 조직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화와 방문 항의를 하고 결국 이에 압박을 느낀 약국이 포기하는 등 조직적 대응이 있었다”면서 “환자 의약품 접근성을 높여주는 수단인 화상투약기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는 정작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대면 원칙 훼손, 혁신성 부족, 소비자 선택권 역규제, 의약품 오투약 부작용, 개인 민감정보 유출, 지역약국 시스템 붕괴 등 명분을 들어 화상투약기 실증을 반대하고 있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해외에서는 일반 자판기로도 24시간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내는 일반의약품을 약사가 안전하게 판매하는 서비스마저 막혀 있다”면서 “약사회와 대화 시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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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약국에 설치된 쓰리알코리아 원격화상 투약기로 소비자가 약사의 상담을 받으며 의약품을 구매하고 있다. 당시 쓰리알코리아는 정부 규제샌드박스가 지연되자 독자적으로 화상투약기 임시 운영을 시도했다. 용인(경기)=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조율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4월 비대면 진료 업체 닥터나우를 찾아 “낡은 규제로 인해 유망 스타트업이 하루아침에 문 닫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관계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한 달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장관 부재에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 현장에 비대면 진료 기술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라면서 “환자를 중심에 놓고 의료계 단체들이 전향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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