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벤처·스타트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는 '겨울'이다. 업계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투자 한파가 국내에 언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세계적으로 넘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벤처·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초호황을 보였다. 국내도 '제2 벤처붐'으로 불리며 사상 최대 투자를 기록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투자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벤처캐피털 펀딩 규모는 전 분기 대비 19% 감소한 1439억달러를 기록했다. 또 다른 조사업체 피치북은 세계 최대 투자 시장인 미국의 1분기 벤처투자 규모가 707억달러로, 직전 분기 대비 25.9%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가파르게 증가하던 투자세가 몇 개월 만에 급격히 꺾였다. 2분기 통계가 나오면 1분기보다 분위기가 더 가라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올해 벤처 투자 시장에 급격한 반전이 일어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세계 각국은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한 금융정책을 펼치고 있다. 물가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초저금리 시대를 마감하고, 잇달아 금리를 올리고 있다. 기준이 되는 미국이 한 번에 한 스텝(0.25%)만 올려도 세계시장이 꿈틀대는데, 빅스텝(0.5% 인상), 자이언트스텝(0.75% 인상)까지 단행했다. 긴축 재정과 금리 인상은 투자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세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식량난 우려까지 발생했다. 원유가도 고공 행진이다. 글로벌 시장에 공급 불안이 심화하면서 실물경제 시장에 큰 파장을 미쳤다.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기업공개(IPO)가 감소했고, 회수가 불안해지면서 투자가 줄고 있다. 이처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문제를 한 번에 해소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인 투자 한파가 아직 국내 벤처·스타트업계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곧 한파의 영향권에 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외와 우리나라가 같은 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와 달리 국내는 벤처와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자금인 모태펀드가 있다. 정부는 최근 수년간 벤처 투자 펀드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모태펀드에 꾸준히 출자했다. 그 결과 모태펀드를 기반으로 대규모 펀드가 결성됐고, 이 펀드들은 혹한을 버틸 힘이 될 수 있다.
달라진 투자 환경에 맞춰 벤처와 스타트업도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투자가 위축되는 '겨울'에 필요한 것은 '안전한 겨울나기'다.
투자가 위축되는 시기에도 투자는 계속된다. 과거 벤처 투자가 위축됐을 때를 돌아봐도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됐다.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투자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다양하게 펼쳐왔다. 스타트업이 본질인 기술과 서비스에 집중한다면, 제대로 인정받고 성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겨울은 계절의 끝이 아니다.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싹을 틔우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풍성한 수확을 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생존해야 한다.
국내 벤처와 스타트업들이 투자 시장에 다가올 겨울을 잘 이겨내고, 더 단단하고 알찬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