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단체표준 제정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위해

전력통신 관련 A기업은 기존 전력선 통신기술이 낙후하자 100억원을 들여 신기술을 개발했다. 신기술 개발 성공의 기쁨도 잠시 A기업은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민간 기업조합이 운영하는 '단체표준 제정'이라는 난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전력선 통신기술은 한전이 구매처가 되고, 한전이 구매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이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A기업은 단체표준을 제정하는 기업조합에 새로운 기술을 단체표준으로 제정할 것을 요청했으나 경쟁업체 B기업이 새로운 표준 제정을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A기업은 B기업과 7차례나 협의했으나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판로 어려움으로 회사 존망 위기에 처한 A기업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도움을 청하게 됐다.

A기업은 마침내 권익위의 '조정'으로 구매처에 납품할 수 있게 돼 위기에서 벗어났고, 권익위는 이 같은 사례처럼 단체표준 제정 절차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의 일정한 규격, 안정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은 국가가 주도하는 한국산업표준(KS)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서 유통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 주도 산업표준화 정책이 발전하는 기술개발에 따른 표준 제정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됐다. 1993년부터 전문 분야별로 중소기업협동조합 등 민간단체도 자율적인 단체표준을 제정하고 인증하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전력선 통신기술은 전력 분야에 한정된 기술이기 때문에 KS보다는 단체표준 제정 대상 기술이다. 단체표준은 기업으로 구성된 단체의 장이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제정한다. 그런데 민간단체의 자율적인 단체표준이어서 구성원 모두의 합의가 단체표준 제정의 전제가 된다.

새로운 기술개발이 이뤄진다 해도 특정 기업이 반대하면 단체표준 제정은 불가능하다. 그동안은 단체표준 제정에 따라 개별 기업은 경제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꼭 필요한 단체표준 제정이 불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 피해는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게 된다.

권익위는 올해 4월 단체표준제도 운영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 소관 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에 권고했다.

기업 간 이해관계로 단체표준 제정이 불발될 경우 해당 단체표준이 국가산업발전 등 공익을 위해 필요성이 인정될 때는 단체표준을 제정하고자 하는 단체의 장은 국가기술표준원장에게 의견표명을 요청하도록 했다.

요청받은 국가기술표준원장은 민간기구이면서도 중립적인 분쟁협의위원회에 단체표준 제정의 필요성 심의를 요청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단체의 장에게 의견표명을 하도록 함으로써 지나친 사익 추구 행위로 단체표준 제정이 불발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단체표준 제정을 위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표준심사위원회 등에 이해충돌방지규정을 두도록 했다. 특정 기업집단과 관련된 특수 이해관계자의 심의 참여를 방지함으로써 심의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 밖에 단체표준 제정을 위한 각종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이해관계자나 관련 학회 등에 공개하도록 했다. 심의 결과에 대한 외부 감시를 통해 심의 결과의 타당성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도 권익위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서 사회에 남아 있는 불공정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행정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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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lawljh@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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