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성 입증 의무 논란에도
정책적 판단으로 밀어붙여
전문가 "첫 단추부터 잘못"
중대 사안 위주로 규제될 듯
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총수 일가 일감 몰아 주기 제재에 대해 부당성 증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사익편취 입증이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정책적 해석을 내세우면서 법조문을 만드는 첫 단추를 잘못 뀄다고 지적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부과한 과징금이 취소되면서 공정위의 대기업 제재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사익편취 금지제도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따라 2014년 2월 공정거래법에 도입됐다. 이전에도 대기업집단이 특정 계열사를 부당지원하는 행위는 제재 대상이었다. 부당지원행위 금지조항은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등을 지원하는 행위'를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당지원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이익을 보더라도 경쟁 제한이나 경제력 집중과의 관련성 입증에 어려움이 있어 특수관계인의 사익편취를 조항으로 넣어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재벌 개혁'을 위한 무기로 사익편취 규제 조항을 사용했다. 2017년 고등법원에서 부당성 증명 문제가 제기됐으나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기업에 대한 제재는 멈추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판결 결과가 예측 가능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에 부당한 지원 행위가 언급되는데 부당성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정책적 해석이지 법리적으로는 맞지 않을 공산이 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사익편취 규제 관련 제재가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도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부당성 판단에 대해 공정위와 법원의 입장이 다른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예산정책처는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부당성 판단 여부와 관련해 법원과 공정위의 기존 입장이 다른 상황으로, 앞으로 행정소송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나갈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공정위가 소송에서 지면 과징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법원 판결 후 공정위는 2020년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 심사 지침을 시행하면서 부당성과 관련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이 귀속됐는지는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변경했다. 대법원 판결 결과도 심사 지침에 반영될 예정이다.
공정위가 제재했거나 앞으로 제재할 예정인 사건에 미칠 영향도 크다. 공정위는 한진을 시작으로 효성, 하이트진로, LS, 태광, 대림 등을 사익편취와 부당지원행위로 제재했다. 이 가운데 일부 건은 소송이 제기돼 법원에 계류돼 있다. 한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이들 사건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는 규모가 작더라도 총수 일가에 이익을 주는 것을 다 잡으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더 구체적인 증거를 잡아야 할 것”이라면서 “경영권 편법 승계 등 중요한 사안 위주로 제재하라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