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15>혁신기어를 바꾼다는 것

기어(Gear). 톱니가 있는, 맞물리는 부품을 말한다. 분명히 인공 창작물로 생각되는 이것이 다양한 유충 다리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이들 다리에는 각 10~12개의 400마이크로미터(㎛) 길이 톱니들이 있다.

이들 기어는 항상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점프할 때가 되면 톱니들이 서로 맞물리게 된다. 점프 후에는 기어가 정지 지점까지 회전한 다음 잠금이 해제된다. 다음번 도약 때까지.

혁신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물론 완전히 동일한 혁신은 없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혁신은 누적된 진화의 결과이며, 불가역으로 전제되는 탓이다. 하지만 혁신이 꼭 진화(evolution)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급진적 진보(revolution)는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살아남는 자와 도태되는 자의 갈림길도 이때 드러난다.

커피 한 잔을 떠올려 보자. 여기에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하나 있다. 물론 미국의 경우지만 예전보다 지금 사람들이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꽤 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50년 동안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커피 비즈니스의 매출은 근래 10여년 사이만 해도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즉 소비자들은 커피를 덜 마시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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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물론 여기엔 수많은 이유가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첫째는 우리가 스벅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기업이다. 길거리 군데군데 있던 길쭉한 카운트와 동그란 회전의자에 밍밍하게 내린 커피를 팔던 도넛 가게가 진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커피의 향연으로 바꾸었다고 평한다.

이 기업이 창조한 건 잘 만든 커피만이 아니다. 누구나 같은 커피 대신 나만의 취향이란 걸 기꺼이 커피 한 잔에 담으려 했고, 몇 배나 비싼 가격을 지불할 만한 공감 가치와 공간 느낌을 창조했다. 이렇게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사람들이 직장과 집 밖에서 커피를 소비하는 방식을 재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로가 이 기업에 돌아가지는 않는다. 큐리그(Keurig)는 미리 제조된 커피 캡슐로 한잔의 커피를 나름대로 재정의했다. 한 번에 여러 명이 반나절은 마실 커피를 내리는 대신 '한 번에 한 잔'을 버튼 하나로 가능하게 했다. 그럼으로써 직장과 가정에서 커피를 소비하는 방식을 재창조했다.

이들 두 기업이 만든 것은 단지 커피 비즈니스만이 아니었다. 우리로 하여금 기업 가치를 달리 판단하게 했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상위 20개 기업의 매출이 1달러 증가할 때 기업 가치는 3달러 40센트 상승했다. 새 제품과 비즈니스를 창조한 기업에는 매출 1달러에 5달러 60센트의 기업 가치로 보상해 줬다.

2010년대 초 오랄B는 매출이 멈칫하고 있었다. 이즈음 칫솔은 두 종류였다. 일반 칫솔과 한참 비싼 전동칫솔이었다. 오랄B는 8달러짜리 펄서(Pulsar)를 내놓는다. 전동칫솔을 아니었지만 전원을 켜면 칫솔모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첫해 매출은 기대치를 훌쩍 넘어선다. 프록터앤드갬블이 모기업 인수에 천문학적 돈을 내놓게 하는 데 한몫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 시장이 포화됐다고 말한다면 커피를 한번 떠올려보라. 수 백년 동안 변치 않던 것이 이제는 전기모터와 기어들이 작동하는 새 방식이 됐다. 당신의 비즈니스가 이만큼이나 오래됐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푸념엔 근거도, 동정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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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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