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회·지배구조(ESG)란 단어는 불과 2년 전과 달리 기업 임직원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특히 금융기관에는 투자의사 결정의 중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국제사회는 ESG를 접목한 금융을 '지속가능금융'이라 칭하며 유엔 지속가능목표(SDGs) 달성을 위해 금융기관의 지속가능금융 리더십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속가능금융은 ESG금융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ESG금융'의 파도는 코로나19를 계기로 2020년 국내에 도달했다. 국제사회, 투자자, 신용평가사 등이 금융기관에 ESG를 요구하기 시작하며 작년부터 급속히 퍼졌다.
ESG금융 확산과 함께 정부는 물론 금융시장이 가장 먼저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 ESG금융 지원 대상의 정의였다. '누구에게 ESG금융을 지원해야 하는가'다. 그 가운데 환경(E) 금융지원 대상을 규정한 것이 '녹색 분류체계'(Green Taxonomy)다. 한국보다 먼저 ESG금융이 확산된 유럽연합(EU)은 2020년 6월 'EU 녹색 분류체계'를 발표했고, 올해 6월부터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RD)을 통해 금융시장에 도입된다. 녹색 분류체계 마련부터 금융시장 적용까지 2년이 소요됐다. 한국도 EU 녹색분류체계와 ISO 녹색분류체계(ISO14030-3)를 참고해 작년 12월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Green Taxonomy)를 발표했고, 이달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정부와 시장 모두가 원했던 ESG금융 지원 대상이 규정된 만큼 적용만 잘하면 될 것 같지만 간단치가 않다. '수소제조'처럼 녹색분류체계 활동에 해당된다고 지원 대상으로 모두 인정되는 게 아니다. 2단계로 활동 기준, 인정 기준, 배제 기준, 보호 기준 등 여러 평가 항목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평가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지난 12일 중요 정책 방향으로 가겠다고 발표한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엄격한 평가·검증·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녹색전환 활동 참여 매력이 낮은 상황에서 엄격성만 강조하다 보면 금융 접근성이 떨어져 녹색 전환 활성화에 역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는다. 그러나 작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녹색 전환 동참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지향하는 탄소중립의 공정한 전환 관점에서도 중소기업의 녹색 전환은 중요하다.
올해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 녹색전환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녹색 분류체계가 오히려 녹색전환을 가로막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평가방법론 완화는 그린워싱과 시장 신뢰성 하락을 초래하니 대상에 따라 평가방법론을 달리하면 어떨까. 녹색 채권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는 투자자의 수익 극대화, 손실 리스크 최소화 요구에 맞게 엄격성이라는 잣대가 필요하다. 공신력 있는 제3자 검증을 통해 투명하고 엄격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다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고효율 설비 교체 등 극소규모 사업이 대부분인 중소기업의 녹색전환 활동에 대해서는 엄격성보다 금융 접근성 향상에 초점을 두고 평가를 간소화해야 한다. 국제 온실가스 감축 플랫폼인 골드스탠더드(GS)도 극소규모 사업은 검증기관의 제3자 검증 없이 사무국이 직접 확인 절차만 거치는 간소화 과정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춰 준다. 녹색금융을 취급하는 금융기관과 중소기업 모두 부담을 최소화해야 중소기업 녹색전환 동참이 가능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모두가 피로감을 느낀다면 시장의 자발적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유엔에서 추진한 청정개발체제(CDM)도 처음에는 평가 수준을 낮춰 접근성 향상·활성화에 집중했고, 단계적으로 평가 수준을 높여 나가는 방법을 취했다. 시장의 관심과 참여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고 당장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만큼 금융 장벽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여야 녹색전환에 대한 자발적 참여 동인을 높일 수 있다. 교육·컨설팅을 통한 인식 전환, 역량 형성도 필요하다.
녹색 분류체계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넘어야 할 ESG금융 이슈가 산적해 있다. EU는 이미 지난달 '사회'(S) 택소노미를 발표했다. ESG금융이 E를 기점으로 S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도 새 정부가 출범하고 녹색 분류체계 시범사업을 하는 올해가 중요하다.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 과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는 묘수를 만들어서 ESG금융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
유인식 IBK기업은행 ESG경영팀장 yuinsik@ib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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