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넘사벽

“5년이 지나도록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최근 '여전히 높은 이통사 장벽…후발 본인확인 기관, 우회로 찾기 고심' 기사를 취재하면서 본인 확인기관 신청을 준비하거나 이미 지정된 기관에서 공통으로 나온 반응이다. 휴대폰 기반 본인확인 시장의 95% 이상 점유한 이통사 패스(PASS)와 경쟁할 수 없는 시장 구조 문제는 2016년 당시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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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본인확인 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새로 추가하는 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신용카드 업계는 이통사가 영업대행사인 신용평가사를 압박해 현실적으로 신용카드 방식을 도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통사와 신평사 간 영업대행을 위한 표준계약을 맺는데 사실상 독소조항에 해당하는 내용이 합의돼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떠오르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설명 자료를 내놨다. 하지만 이해 관계자 입장에서는 문제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신평사는 “이통사의 휴대폰 본인 확인서비스 제공을 위한 대행 업무 계약은 표준계약이므로 특정 조항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신규 본인확인서비스 제공에 대해 압박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방통위에 해명했다.

이통사도 같은 입장이었다. 이들은 “표준계약의 특정 조항은 대행사가 타 인증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의 결합·혼용에 따른 남용·유출 방지를 위한 것”이라면서 “신평사에 신용카드 방식 본인 확인서비스의 진행 사실 여부를 확인한 적은 있지만 서비스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새로 지정된 본인확인기관과 지정을 준비하는 다수 기업에서 왜 5년 전과 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결국 이통3사와 신평사 간 휴대폰 방식 이외의 본인확인 서비스 제공 시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에서 실질적인 업무 제약이 발생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타사 본인확인서비스 도입 시 사전 협의해야 한다' '타사 본인확인서비스 도입 시 별도 물리서버를 대행사가 구축해야 한다'는 규정을 문제로 꼽는다.

이 내용이 실제 표준계약이든 구두 명시든 신평사에는 실질적인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표면상으로는 신평사가 여러 본인 확인기관과 계약을 맺고 본인확인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통사 패스를 위협할 수준의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려면 사실상 시장을 95% 이상 점유한 이통사와 계약 해지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이통사는 펄쩍 뛴다. 어떤 본인 확인기관과 계약을 맺든 신평사 자율 의지이며, 이통사와는 별도의 협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카카오·네이버가 전자서명 인증사업자 지위를 획득하고 인증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유사 시장을 상당수 장악했고, 앞으로 본인 확인기관 지위까지 따내면 패스 장악력이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한마디로 더 '이통사=갑'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알고도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방통위는 “시장 자율에 맡길 사안”이라며 개입을 경계했다.

다음 달 새로운 본인 확인기관 신청이 시작된다. 다수 은행과 핀테크 기업 신청이 예상되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다루는 자격이 주어지는 만큼 평가는 까다롭고 통과하는 기업이 얼마나 많을지 알 수 없다. 그저 유력한 핀테크 사업자들이 신규 기관으로 지정돼 시장을 장악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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