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02>오만으로부터 배우다

애러건트(Arrogant). 익숙하지 않지만 종종 사용되는 단어다. 거만한, 오만한이라는 의미다.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심지어 기업에도 쓰일 수 있다. 이 단어엔 한껏 고조된 불편함이 묻어 난다. 자신들은 특별하다거나 자신들이 최고라는 으스댐이 지나치다면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정점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곧 닥쳐올 내리막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기업은 무엇으로부터 교훈을 얻나. 수많은 원천 가운데 하나는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다. 여기엔 배울 것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있다. 실상 우리 기업의 성공 신화에는 이런 것이 많다.

이젠 우리 기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에도 이런 반전이 있다. 꽤 오래전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외국 기업에 전자레인지 납품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몇 백대로 시작한 것이 몇 만대로 늘어날 즈음 그 기업의 임원 중 한 명이 물어 왔다. “왜 한국 사람들은 우리 제품을 사지 않는 거죠.”

난처한 마음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품은 좋은데 우리 사정에 좀 안 맞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날 그는 자신이 따라하지 말아야 할 뭔가를 깨닫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해외에서 성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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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훗날 이 기업이 유럽에 진출하면서 떠올린 첫 질문은 '이곳은 어떻게 다른가'였다. 미국 시장에 맞춰 만든 제품을 내보내고선 '그들은 왜 사지 않는 거지'라고 물을 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의 차이였다.

취향 차이는 금세 눈에 들어왔다. 유럽에선 고기와 닭고기보다 생선을 선호했고, 데우지 않는 차가운 요리도 꽤나 많았다. 이렇게 나온 것이 유럽형 모델이었다. 1983년 독일과 노르웨이, 1984년 프랑스·핀란드·벨기에로 수출된다.

거기다 대개 시장조사라면 영업이나 마케팅 부서 몫이지만 이곳에선 달랐다. 엔지니어가 스스로 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실상 전화나 팩스로 들은 빨간색이란 얘기론 불충분했다. 정작 뭔가를 만들어 내자면 어떤 종류의 빨간색인지 알아야 했다. 성능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 더 미묘한 것, 취향과 심지어 느낌을 찾으려 했다.

그러니 가전전시회라도 참관한 다음이면 그 도시에 있는 매장을 찾아다녔다. 어떤 모델이 인기가 있는지, 어떤 기능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지, 불평은 뭔지를 찾아다니며 묻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장과 취향에 맞춘 제품은 이 기업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지금도 그 명성은 여전하다.

코스타리카의 작은 연구소들이 모여 있는 한 건물이었다.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소파가 듬성듬성 있는 공간이었다. 안내자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벽면을 칠한, 그전에 본 적 없는 색깔이었다.

분홍, 자주, 붉은색 또는 심지어 푸른빛과 초록빛이 함께 느껴지는 그 중간의 뭔가였다. 어쩌면 그들 주변에는 흔한 아침 이슬 머금은 꽃 색깔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이방인은 그 일상의 색은 어찌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것이 정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 이 생각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기업의 오만함으로부터 배운 것도 브랜드로 삼은 기업을 우리는 본다.

이들이야말로 다시 없을 행운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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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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