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파이코인' 내 개인정보가 보이스피싱 등에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시장에서 제기됐다. 민원이 잇따르자 정부 정보기관 등이 파이코인 가입 및 운영에 위법 및 범죄 악용 여부가 있는지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아니라 정보기관이 코인 범죄 관련 조사에 나서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유사수신 등 일반적인 코인 사기 범죄가 아니라 해외 범죄조직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연계돼 있어 공조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파이코인은 모바일 스마트폰 유휴 자원을 통해 코인을 채굴하는 것을 콘셉트로 내세운 가상자산이다. 추천인 제도가 존재하고 추천인을 많이 모을수록 채굴 속도가 빨라진다. 채굴에 배터리 전원을 소모하지 않는 데다 스마트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고 해도 24시간마다 코인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통상 비트코인을 포함한 대부분 가상자산은 해킹이나 이중장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가상자산을 지급하는 방식을 쓴다. 암호 해독 난이도가 지속 상승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
파이코인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가상자산의 채굴 방식과 큰 차이점을 보이기 때문에 코인 '채굴'이 아니라 '주조'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추천인 제도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피라미드나 다단계 사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스텔라 합의 알고리즘'을 활용한다고 재단 측은 주장하고 있으나 채굴 방식과 장부 검증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
아직 이를 상장해 유통하는 가상자산거래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파이코인의 실질적 가치는 없다. 참여자들은 투자되는 비용이 없다는 측면에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판단에 파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앞서 대부분 가상자산들이 상장이 이뤄진 후 가치가 수백배 뛰었기 때문에 파이코인 역시 이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파이코인이 가상자산으로서는 드물게 인출 과정에서 고객확인제도(KYC)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트래블룰 적용을 위해 국내 대부분 가상자산거래소는 KYC를 통해 고객 신원을 확인하고 있지만, 가상자산 애플리케이션(앱)이 직접 KYC를 도입하는 사례는 파이코인 이외에는 없다. KYC 인증을 위해서는 본인 이름과 주소, 신분증, 계좌번호 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들 정보가 유출될 경우 큰 범죄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파이코인에서 요구하는 KYC를 진행한 후 보이스피싱으로 이어졌다는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체가 불분명한 재단에 KYC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넘겨줄 경우, 이후 정보가 유출되거나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며 “보이스피싱은 물론 메타마스크 등 전자지갑에 보유하고 있는 가상자산도 탈취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