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ESG 경영을 위한 이사회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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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

최근 1~2년 사이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세계 경제 패러다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화두가 있다면 단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꼽을 수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에 정부,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나 기업이 환경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상대적으로 큰 특성상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한 책임이 'ESG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상당 부분 전가되고 있다. 특히 기존 주주자본주의에서 더 나아가 투자자와 소비자, 협력사와 임직원 등 다양한 대내외 이해관계자들을 포괄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ESG 경영에 대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도록 강력한 힘을 실어 주었다.

ESG 경영 확산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 경영 도입 선언이 줄을 이었고, 많은 곳이 이를 이행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을 감행했다. 실제로 내규 개정 등을 통해 법령상 규정된 필수 구성 위원회에 ESG 소관 업무와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거나 ESG위원회 및 지속가능경영위원회 등 신규 위원회를 자발적으로 추가 신설하는 움직임이 하나의 큰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 2년간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169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93곳(55%)이 이사회 산하에 관련 위원회를 구성했다는 CEO스코어의 조사 결과(작년 10월 기준)가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 지배구조의 최상위 기구인 이사회가 ESG 이슈를 감독 영역의 하나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업의 ESG 경영을 공식화하는 상징성을 띤다. 다만 이것이 단순한 선언적 행보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사회 자체적으로 관련 위원회의 내실을 다지는 일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특히 ESG 이슈 관리의 필요성이 내부보다는 투자자를 위시한 외부 이해관계자로부터 발현돼 급작스럽게 추진되는 면이 없지 않다. 위원회의 역량 부족과 여타 위원회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업무 혼선 등 과도기적 한계점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딜로이트가 작년 9월 전 세계 40여 국가의 주요 기업 이사회 소속 35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관련 위원회 절반이 아직은 준비가 미비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위원회의 효과적인 역할 수행을 위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소속 위원 전원 또는 다수가 보유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2% 수준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나머지 48%는 주로 경영진에 의존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활용 또는 관련 지식을 갖춘 위원 1인이 업무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능 측면에서도 기후 리스크와 온실가스 감축목표 관리 등 규제 이행을 위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52%로, 절반에 가까운 위원회가 아직 명확한 업무 정의를 내리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ESG 안건이 정기적으로 논의되는 경우는 42%에 불과했으며, 기업 전략과 사업 계획에 ESG 요소를 반영하는 고도화 작업까지 실행한 비중은 18%뿐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2%가 ESG 이슈에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이 어렵고 미흡하다고 밝힌 것은 응당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ESG 경영 도입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면 이사회 내 관련 소위원회의 조직적 역량과 기능의 실효성 차원에서 완전성을 논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더욱이 외부의 기대치에 궁여지책으로 받아 든 과제의 성격이 크다면 이를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기후변화의 불확실성 속에 기업이 마주할 외부 압력과 ESG 이슈에 대한 관리·감독의 중요성은 앞으로 점차 강화될 것이다. 체계적 준비는 재차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40여 국가의 이사회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 투자,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교훈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이제 막 첫발을 뗀 국내 기업의 이사회에 던지는 조언은 다음과 같다. 내·외부 교육 등을 통한 이사회의 전문성 강화 △경영진의 투명한 정보 보고 및 공유 체계 확립 △기업 전략 내 ESG 요소 반영 및 적극적인 외부 커뮤니케이션 △이사회 기능 지원을 위한 내부 자원 확보 등이다.

이사회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안내자와 조타수 역할을 한다. 이사회의 '전문성' '기능' '효과성' 등 삼박자가 모두 합을 이뤄서 적절히 어우러질 때 기업은 험난한 변화의 물결에 맥없이 휩쓸리지 않고 유영할 수 있다. 자문해 보자. 지금 우리 이사회는 ESG 경영을 감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 inbaek@deloit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