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의료와 전파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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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식 한국항공대학교 교수·전자파학회 부회장

중국 삼국시대 때 조조의 두통을 치료한다고 나섰다가 살해 의도가 있다는 오해로 죽은 화타가 지금 살아 있었다면 MRI로 두통의 원인을 알아내고 진심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의술은 초기에는 사람 손으로 직접 시술하고 봉합하는 방법에 의존하였지만 수천 년이 흐른 후 다양한 방법으로 병을 진단하고 고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병마의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최고 선물인, 양의 기운이 가득한 태양을 DNA로 태어났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환부를 직접 도려내고 봉합하는 의술 외에도 질병이 생긴 환경과 섭생 등 더욱 본질적인 치료에 혜안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 질병 진단을 위해 동·서양 의학 모두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 외에 청진기나 진맥을 활용한 것을 보면 다양한 감각과 도구를 동원해서 인류를 병마로부터 구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후 서양 의학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X-선 발견 이후 환부가 인체 내부에 있는 경우에도 병의 진행을 알 수 있게 됐다. 의료기기는 크게 진단기기와 치료기기기로 나눌 수 있다. 주로 전파를 활용해서 발전해 왔다. 전파를 이용한 진단기기에는 MRI, CT, 초음파진단기기, PET 등이 있다. 모든 진단기기는 인체 외부에서 특정한 주파수의 전파를 발생해서 인체에 쐰 후 맞고 되돌아오는 수신 전파를 분석한다. 하지만 진단기기는 대부분 고가이며, 병원 내에서도 이동성이 제약받고 있다. 어떤 기기는 전리방사선을 이용함으로써 인체에 유해하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와 ㎔ 대역 전파는 비전리방사선으로, 인체에 거의 해롭지 않다. 또한 진단기기로 개발 시 경량화가 가능하다. 가격 또한 낮출 수 있어 전파를 이용한 진단기기 개발이 전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이나 ㎔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면 머지않아 전파를 이용한 진단기기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기를 희망해도 좋다.

현재 진단기기 기술은 해외 거대 기업이 수십 년간 기술을 축적해서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국내에서 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다양한 주파수의 전파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수신 전파의 고해상도, 저잡음, 영상화를 위한 알고리즘 연구에 대한 기초 투자를 지속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 기업도 세계적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치료기기 개발은 의료기기나 전파의료 분야 선진국이 아니어도 도전해 볼 만하다. 전파를 활용한 치료 방법으로는 탐침을 이용한 고주파 온열치료, 외부에서 안테나로 집속하는 온열치료, 전파를 조사하여 암 세포 등의 변화를 유도하는 치료, 전자약으로 불리는 전극을 통하여 외부에서 전파자극을 가해서 암이나 뇌질환을 치료하는 방법 등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 FDA의 승인도 점점 늘고 있다.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남에 따라 획기적인 질병 관리나 치료 방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전파를 활용한 의료 기술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전파를 활용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간 의료 분야에서 규명한 질병의 기전에 근거해서 전파를 쐴 때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주변 세포나 조직에는 부작용이 없는지 등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정부 주도 아래 산업화 연구에 민간과 공공이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좋은 결실을 맺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자 성격과는 다른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분야 특성상 장기간 연구개발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의료와 전파 특성상 융합연구 또한 절실하다.

의료 분야와 전파 분야를 단편적으로 섭력한 인력이 아니라 인류의 병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융합형 전문연구 인력이 필요하다. 대학 시절부터 해당 연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정부나 대형 민간 기관은 오랜 기간 예산을 투입할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양의 의료기기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년간 예산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인력 또한 의료와 전파 분야 양쪽에서 오랫동안 양성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대형병원 등 의료기관과 전파 분야 대학 및 연구기관이 융합연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연구 환경을 마련하고 투자하는 등 관련 기업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협력 연구 또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춘식 한국항공대 교수·전자파학회 부회장 cscho@k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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