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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차기 정부에서 인문사회 학술지원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함을 말하려고 한다. 내가 있는 분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지향적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우리가 디지털문명,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맞으면서 선도국가, 성숙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국가적 사명감을 안고서 인구 감소에 따른 축소사회를 가고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말이다.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지는 회의적이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면 거기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물질적 진보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갈등과 위기, 과학과 공학 패러다임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복합적 문제, 여기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종합적 사유와 통찰이 요구된다.

시대적 중요성에도 인문사회 학술 생태계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 지 이미 오래됐다. 최근 10년 인문사회 학술지원 예산규모는 거의 '초지일관'(?)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간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미 차이 아닌 차별 단계에 이르렀다.

5년간 정부 R&D 예산이 40.8% 증가하는 동안 인문사회 등 순수 학술 예산은 5.3% 증가했다. '2021년 전국대학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전임교원의 국가연구과제 수혜율이 과학기술 분야가 46.1%인 반면 인문사회 분야는 12.8%에 불과하다. 최근 인문사회 분야 대학교수가 줄었음에도 이전보다 낮은 수치가 나왔다.

연구비 총액이나 연구 사업별 단가 차이는 그저 학문적 특성이라고 치자. 학문후속세대 차별은 어떻게 봐야 할까. 박사과정생 연구장려금, 박사후 국내외 연수지원 사업은 과학기술 분야에만 있다. 연구에 참여하는 학생인건비 기준과 현황을 보면 차별이 더 심하다. 학위과정별 학생인건비 지급 기준을 보면 학사학위 과정생은 과학기술이 월 100만원 '이상'이고 인문사회가 100만원 '이하'다. 이는 석사과정생 180만원, 박사과정생 250만원 기준으로 이어진다. 물론 과학기술 분야도 기준을 다 맞추기 어려워서 특별한 사유에 의한 예외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상'과 '이하'라는 기준 제시만으로는 너무 야속하다. 실제 인문사회 석사·박사 과정 학생에게 주는 학생인건비가 월 28만~29만원이라는 사실을 알면 통계 잘못을 의심하기도 한다.

두 분야 간 차별 해소만이 아니라 인문사회 학술지원 예산을 증액해야 할 더 많은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문명전환 시대를 준비하고 대응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연구가 필요하다. 지역 위기 속에서 지역 현안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가 요구된다. 글로벌 위기와 사회적 이슈 관련 거대 어젠다 발굴과 융합적 연구가 강화돼야 한다.

인문사회 분야는 과학기술 분야와 차별 속에서도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미래를 이끌어 갈 역량을 약화시킬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쌓아 온 학술적, 문화적 역량 덕분에 지금 여러 영역에서 세계적 위상을 높여 왔다. 앞으로도 이것이 계속 기대할 수 있을까? 모두가 'K-'에 열광하지만 품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포착된다.

예를 들어 수많은 댓글에서 느끼는 참담함, 타인 배려가 부족한 MZ세대 등을 비판하지만 그것이 그동안 경쟁과 이익, 성장과 발전만을 추구해 온 시간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차기 정부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인문사회 학술지원 예산의 현실적 증액이 필요하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7년에는 인문사회 순수 학술지원 예산이 최소한 1조원에는 도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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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서울대 중문과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이강재 서울대 중문과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kanglee@nrf.re.kr